달력

5

« 2024/5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728x90
[조릿대]
 
 

 

대나무는 줄기와 잎이

아름답고 깨끗해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대는그 성질이 맑고 차고 푸르며 곧다.

청아하고 고고한 품위와 맵시,

매서운 추위 속에서 오히려 돋보이는 짙푸른 기개,

깨끗하게 속을 비워두는 결백함 등의

모든 성질이 절개와 청렴결백을

목숨처럼 여기는 우리의 옛선비와도 같다.

 

우리나라는 선비의 나라이고

그 선비정신을 대표하는 나무가 대나무라 할 수 있겠다.

대의 청담,한아한 기운은 군자의 품위가 있어

청정고결한 마음과 가장 잘 어울렸다.

대는 고결한 사람의 정서와 가까운 친구일뿐만 아니라

간질, 간염, 당뇨병 갖가지 암, 위염, 위궤양 등

갖가지 난치병을 다스리는 귀한 약재이기도 하다.

 

여러 종류의 대나무 가운데서

우리나라에 가장 흔한 대나무인 조릿대는

암, 당뇨병, 고혈압, 동맥경화, 정신불안,

간염, 여드름, 습진, 술독, 기침, 위염, 위궤양

등의 치료 예방효과가 빼어나게 높다.

 

조릿대는 벼과에 딸린 늘푸른 작은키 나무다.

키는 1m에서 2m쯤 자라고 줄기지름은 6mm쯤으로

대나무 가운데 가장 작은 종류다.

줄기를 누런빛이 나는 포엽이 감싸고 있다가

2~3년 뒤에 떨어지며 잎은 길쭉한 칼모양으로

길이는 한뼘쯤 된다.

 

꽃을 본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몹시 드물게 핀다.

3~6송이의 꽃이 모여 작은 이삭을 이루는데

꽃을 둘러싸고 있는 포엽이 짙은 보라색이어서

보라색으로 보인다.

대개 6~7년만에 꽃이 피는데 꽃이 피고나면

대밭의 일부 또는 전체가 누렇게 말라 죽거나 세력이 몹시 약해진다.

열매는 보리나 밀처럼 생겼는데 녹말이 많아 식량으로 쓸 수 있다.

 

대나무 열매를

죽실(竹實),죽미(竹米),야맥(野麥)등으로 부르는데

찰기가 있고 맛은 수수와 비슷하며

밥이나 떡을 만들어먹으면 맛이 괜찮다.

한라산이나 지리산속에 사는 사람중에는

조릿대 열매를 몇가마니씩 모아두고 식량으로 삼는 사람이 더러 있다.

이것으로 술을 빚기도 하고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몸을 가볍게 하고 기운을 돋우며 오래 살게한다는 옛기록도 있다.

한라산이나 지리산 등 남쪽의 조릿대숲은

몇십년만에 한번씩 일제히 꽃이 피어 모두 말라죽고는

그 열매가 떨어져 세 대밭이 만들어지곤 한다.

옛날 울릉도에서 폭풍우로 뱃길이 끊기고 양식이 떨어져

섬사람들이 모두 굶어죽게 되었을 때 마침 섬의 조릿대가

일제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이것을 먹고 목숨을 연명한 적이 있다고 한다.

 

옛말에 봉황은 배가 고파도 아무것이나 먹지않고

오직 대나무 열매만을 먹는다고 했다.

봉황은 곤륜산에 살며 황하의 물을 마신다는 신령스러운 새다.

이 새가 대나무 열매만을 먹고 산다는 것은 그만큼 귀하기 때문이다.

봉황을 본 사람이 없으니 알 수 없으나

중국에서 국가적인보물로 여기는 희귀동물인

팬더곰은 대숲에서 살며 댓잎만을 먹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상징인 코알라곰이

유칼리나무 위에서 살며 유칼리잎만 먹고 살듯

이 세상에는 한가지 식물만 먹고 사는 짐승이 있다.

조릿대는 다른 대나무들과 마찬가지로

땅속에 뿌리줄기를 뻗어 번식한다.

땅속에 뿌리줄기가 빽빽하게 엉키고

잎은 숲속을 완전히 뒤덮어 조릿대 밭에는

다른 식물이 발붙이기 어렵다.

 

조릿대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다.

우리나라 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릿대말고

울릉도에서 자라는 키가 큰 종류인 섬조릿대,

키가 작고 잎도 작으며 겨울철에는

잎 가장자리가 말리고 갈라져서

마치 줄무늬를 가진 듯이 보이는 제주조릿대,

완도와 백양산에서 자라는 섬대,

그리고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자라는 신이대가 있다.

출처: 최진규의 토종약초 장수법

:
Posted by 약초세상
728x90

다산의 아언각비(雅言覺非)

다산 정약용(1762~1836년) 선생의 저서인

‘아언각비(雅言覺非)’는 아름다운 말을 살리고

잘못 사용하고 있는 말을 고쳐서 사용한다는 뜻의

제목을 가진 책이다.

“차(茶)란 겨울에 푸른 나무이다.

육우의 ‘다경(茶經)’에는 첫째 차(茶), 둘째 가(가),

셋째 설(설), 넷째 명(茗), 다섯째 천(천)이라 하였는데,

본래 이것은 초목의 이름이지 마시는 음료의 이름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를

탕(湯)이나 환·고(丸·膏)처럼 마시는 것으로 인식하여

무릇 약물을 단조롭게 다리는 것을 모두 차라고 하여

생강차, 귤피차, 모과차, 상지차(桑枝茶), 송절차(松節茶),

오과차(五果茶)라고 관습적으로 항상 사용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마시는 차는 산차속(山茶屬) 차나무의

새 순과 어린잎으로 만든 것만을 차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마실 거리라는 뜻으로 이르는

인삼차, 보리차, 생강차 등은

차를 대신해서 마시는 대용차이지 차는 아니다.

스님들의 은어로 ‘반야차(般若茶)’라는 말이 있다.

불가에서 금기로 여기는 술을 이르는 말이다.

또 곡식을 발효시켜 만든 술은 ‘곡차(穀茶)’라 말한다.

다산선생의 말대로라면 모두 아름다운 말(雅言)은 아니다.

커피도 대용차의 한 종류일 뿐이니,

정약용 선생이 현대에 살았다면

커피숍을 찻집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서 지적하지 않았을까.

차의 종류를 나누는 기준

1. 발효과정

먼저 차를 만들면서

발효과정을 거쳤는가에 따라서 차의 종류가 달라진다.

발효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차를 녹차라 한다.

완성된 찻잎이 녹색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다(製茶)시 찻잎이 발효될 여건을 만들지 않기 위해

신선한 찻잎을 고압증기나 가열된 솥에서 익혀내어

산화효소의 활성을 멈추게 한다.

2. 익혀내는 방법

찻잎을 익혀내는 방법에 따라

덖음차(炒茶)와 증차(蒸茶)로 다시 나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녹차는 대부분이 덖음차이고

증차는 주로 일본에서 발달하였다.

3. 발효정도

발효차는 발효정도에 따라

약발효차(포종차 등), 중간발효차(오룡차 등),

강발효차인 홍차, 그리고 계속 발효가 진행되는

후발효차인 흑차(보이차 등)가 있다.

최근까지 국내에서는 대부분 녹차만 만들어왔지만

전통적인 발효차를 연구해 우리의 발효차들이

하나둘씩 만들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발효 외에도 찻잎의 모양, 다른 재료의 혼합,

완성된 차의 형태, 찻잎을 따는 시기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꽃이나 향료 등을 섞은 향편차(香片茶)로는

자스민 꽃을 섞은 자스민차가 대표적이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현미 녹차도 혼합차에 속한다.

4. 제품의 모양

제품의 모양에 따라서

덩이차, 잎차, 가루차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차를 증기로 쪄서 둥근 떡과 같은 모양이나

벽돌, 동전 등과 같은 모양으로 찍어내는

덩이차[긴압차(緊壓茶)]와

잎모양 대로 만든 잎차[산차(散茶)],

일본에서 발달한 녹차를 미세하게 갈아 만든

가루차[말차(末茶)]가 그것이다.

5. 시기

찻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서는

봄차, 여름차, 가을차로 나누기도하고,

곡우(穀雨, 24절기의 하나로 통상 4월 20일) 전에

그해 첫 찻잎으로 만든 우전차(雨前茶),

입하(立夏, 통상 5월 5~6일 경) 전에 만든

입하차(立夏茶) 등이 있다.

6. 모양(크기)

찻잎의 모양(크기)에 따라

세작(細雀), 중작(中雀), 대작(大雀)으로 나누기도 한다.

찻잎의 모양이 참새의 혀 같은 어린잎으로 만들었다하여

작설(雀舌)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통상 고급 잎차의 대명사가 되었다.

또한 차의 어린 순이 뾰족한 창(槍)과 같고

잎은 창에 단 깃발(旗)과 같다하여

순 하나에 잎 하나가 핀 것을 1창1기라하고

1창2기, 1창3기로 분류하기도 한다.

차의 6대 분류

원래 중국의 분류법이나

지금은 모든 나라에서 사용하는

차 제품의 색깔에 따른 분류법이다.

1. 녹차(綠茶)

녹색을 유지하기 위해 전혀 발효시키지 않은 차로

익히기, 비비기, 건조의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

2. 백차(白茶)

차의 순이 하얀 털로 덥혀있는 품종으로 만들며,

흰 털을 보호하기 위해 익히지 않고 비비지도 않는다.

3. 청차(靑茶)

중국 광동과 대만에서 발달한 약발효차로

맛보다 향기를 중요시한다. 철관음, 오룡차가 있다.

4. 황차(黃茶)

녹차를 가공하는 중에 방치하여

찻잎이 누렇게 발효되는 과정을 거친다.

비효소성 발효차로 가장 오래된 차 종류의 하나이다.

몽정황아, 군산은침 등이 유명하다.

5. 홍차(紅茶)

85% 이상 강하게 발효시킨 차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고 있고,

중국의 기문홍차, 스리랑카의 우비홍차,

인도의 다이질링홍차를 세계 3대 명차라고 한다.

6. 흑차(黑茶)

중국 운남성이 산지이며 교목의 대엽종으로 만든다.

찌고 비벼서 두텁게 퇴적시켜서 발효를 시킨다.

주로 덩이차로 생산하고 후발효차이다.

김 동 곤 (쌍계제다 대표)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
Posted by 약초세상
728x90

알 속의 병아리가 탄생의 시간이 다가오자

알 속에서 미세하게 껍질을 쫀다.

어미닭도 밖에서 정확하게 같은 곳을 쪼아,

병아리에게는 지금까지의 전부였던 알을 깨부수고

새 세상으로 인도한다.

안에서 쪼는 것을 줄(줄)이라 하고

밖에서 쪼아 주는 것을 탁(啄)이라하니,

줄탁(줄啄)은 둘이 함께 행하여야 이룰 수 있음을 뜻하는

오묘한 생명탄생을 이르는 말이었다.

선가(禪家)에서 제자의 공부를 점검하고

의문을 꼭 맞는 방법으로 가르쳐

도(道)에 인도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옛날 선종의 조사(祖師)들은

제자들이 화두(話頭) 타파의 극점까지 와 있을 때,

깨달음 가까이에서 답답해할 때,

상식적으로 상상 할 수도 없는 고함이나 매질, 동

문서답 등으로 활연대오(豁然大悟)의 기폭제를 제공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조주선사의 차(茶),

마조도일의 고함과 욕설(喝),

덕산의 몽둥이(棒) 등이 있었다.

제자와 스승이 이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줄탁함으로

서로 상응(相應)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차로서 제자들을 도로 인도한 선사로

중국의 조주종심(趙州從심 778~897년)과

조선의 벽송지엄(碧松智嚴 1464~1534년)이 유명하다.

끽따거(喫茶去)와 점다래(點茶來)

120세까지 살았다고 하여 고불(古佛),

또는 하북의 조주(趙州)지방에서 선을 휘날렸다하여

조주라 불리웠던 조주선사는 도를 묻는 누구에게나

“차나 마시게(喫茶去)”하였다.

조주의 관음원(觀音院)에서 손님을 맞이하면서, 한 중에게 물었다.

‘전에 여기 와 본적이 있는가?’

‘네 있습니다.’

‘그럼 차나 한 잔 마시게.’

또 한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 와 본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차나 한 잔 마시게.’

곁에 있던 원주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와 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차를 마시라고 하신 것은 그만 두고라도

무엇 때문에 와 봤다는 사람에게도 차를 마시라고 하십니까?’

스님이 ‘원주야!’ 하고 부르자

원주가 ‘예’ 하고 대답하자

‘자네도 차나 한 잔 하게.’

그 유명한 끽따거 화두로 茶가 道이고,

차가 도에 이르게 하는 길이자 차를 마시듯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임을 강조한 것이다.

벽송당은 전북 부안 출신으로 무

예를 좋아하며 무과(武科)에 뽑혔고,

여진족이 침입했을 때 허종(許琮) 장군 휘하에서 공을 세웠다.

28세에 출가하고 직지사 벽계정심(碧溪淨心)의 법을 이었다.

이후 지리산 화개동의 의신사(義神寺)에서

선을 선양하고 교(敎)를 담론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니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선사는 설법을 하면서 주의를 환기시키거나 결론을 강조할 때,

깨침에 줄탁이 필요할 때 곧잘 차를 이용하였다.

한번은 많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할 때였다.

이제 게송을 지어 읊고, 설법을 마치려 할 때였다.

선사는 불자(拂子)를 들어 한 번 휘두른 다음 시자(侍子)를 불렀다.

“차를 따르라(點茶來)” 한참을 묵묵히 앉았다가 게송을 읊는다.

푸른 대는 바람 때문에 더욱 곧고 (翠竹和風直)

붉은 꽃은 이슬 머금어 더욱 향기롭도다 (紅花帶露香)

1534년 겨울, 화개동의 수국암(壽國庵)에서

제자들에게 법화경을 강설하고 있었다.

문득 크게 탄식하기를 “대개 모든 법에서 적멸상(寂滅相)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니 이제 너희들도 만일

부처님의 말없음을 믿으면 곧 자가심지(自家心地)를 깨칠 것이다.

오늘은 노승도 또한 너희들을 위해 적멸상을 보이고 가리라.

너희들은 밖을 향해 구하려 말고 마음 깨치기를 힘써라.”

말을 마치자 시자를 불러 “점다래” 하고 단정히 앉아 문을 닫았다.

한참동안 잠잠하여 제자들이 문을 열고 보았을 때는 이미 입적(入寂)한 뒤였다.

선사의 나이 71세 였고, 스님이 된지 44년 이었다.

쌍계사에 부도가 남아있다.

벽송당은 차의 고향 화개동에서 차를 따르게 하고

지리산 스님들에게 차로써 적멸상을 가르친 것이다.

서산대사와 다선일미(茶禪一味)

서산대사(1520~1604년)는

15세 소년으로 지리산에 유람왔다가

화개 의신동(義神洞)에서 스님이 되어

전후 20년을 화개에서 살았다.

화개의 신라고찰 내은적암(內隱寂庵)을 중창하고

너무나도 좋아서 “청허원(淸虛院)”이라 하고

스스로 청허라고 자호(自號)하였다.

청허원에서 대표적인 저술인

‘선가귀감(禪家龜鑑)’을 집필하고

화개동을 노래한 많은 시와 글들을 남겼다.

중 대여섯

내 암자 앞에 절을 지었네

새벽 종에 같이 일어나고

밤 북에 같이 잔다네

시냇물에 달을 함께 길어

차 다리니 푸른 열기 나뉜다.

날마다 무슨 일 의논하는가

염불과 참선이라네

‘두류산 내온적암’이다.

대사는 “마음의 고향”이자 우리나라 “차의 고향”인 화개에서

스님들이 매일하는 일은 차 끓이고

염불하며 참선하는 것이라 노래하고 있다.

즉 “다선일미” 사상을 제창하고 있는 것이다.

서산대사는 선은 부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의 말씀이라고

선교의 진수를 한마디로 경쾌하게 정의하였고

이능화는 “조선의 선교사”에서 “서산은 조선불교의 중흥조이다.

조선불교는 순도와 아도에서 시작하여 함허와 서산이 완성하였다.”고 찬양하였다.

서산대사는 화개동에서 수행자를 위한 ‘선가귀감’을 지었고,

수행자의 다풍(茶風) - 다선일미를 생활화 하였다.

김 동 곤 (쌍계제다 대표)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
Posted by 약초세상
728x90

진감 혜소(眞鑑 慧昭)

진감(774~850년) 선사는 27년간 당나라에 유학하였다.

6조 혜능의 현손(玄孫 - 5대 법손)으로 선을 배우고 행하였다.

불교 음악인 범패(梵唄)를 배워 우리나라에 최초로 전하기도 하였다.

830년에 귀국하고 대렴이 흥덕왕명으로 차씨를 심은 지리산 화개동으로 왔다.

옥천사(쌍계사의 전신)를 창건하고 범패를 가르쳤다.

850년, 선사가 쌍계사에서 입적하자

왕명으로 고운 최치원이 선사의 비문을 짓고 썼다.

비명은 ‘진감선사 대공령(大空靈)’으로 국보 제 47호 이다.

고운선생의 비문에서 선사의 차 생활을 이렇게 적고 있다.

다시 중국차를 공양하는 이 있으면

돌 솥에 섶나무를 때어

가루내지 않고 다려서는

차 맛을 모른다고 하며,

단지 배를 적실뿐이라 하네.

참됨을 지키고 속됨을 싫어함이 모두 이러하였네.

짧은 비문이지만 신라하대의

차 생활 일면을 알 수 있게 하는 당대의 금석문이다.

신라에서는 덩이차(團茶)를 가루 내어 끓여 마시는

당나라 육우가 지은 ‘다경(茶經)’과 같은 음다법이 행해졌다.

또 차를 끓이는 다구로 돌솥이 사용되었다.

굳이 중국차(漢茗)라 한 것은

신라에도 토산차가 있었다는 반증이 아닌가 한다.

선사의 모든 생활은 속됨을 싫어하고 진솔함을 지켰다(守眞惡俗)고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잠언이 아닌가 한다.

월명(月明)과 충담(忠談)

신라 35대 경덕왕(742~765년)시대,

정치는 사치와 주색으로 혼미하였지만

불국사와 석굴암이 건설되고 성덕대왕 신종이라는

에밀레종이 제작되는 문화의 황금시대였다.

경덕왕 19년(760년) 4월 1일,

해 두개가 나란히 나타나 10일 동안 없어지지 않는 괴변이 일어났다.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인연있는 스님을 모셔다가 꽃을 뿌리고

부처님을 공양하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월명스님을 모셔와 도솔가(兜率歌)를 짓게하고

산화공덕재(散花功德齋)를 지냈더니 해의 변괴가 사라졌다.

왕이 가상히 여겨 좋은 차(品茶) 한 봉과 수정염주 108개를 하사하였다.

지금까지 두 개의 태양은

왕과 정치적인 반대파를 상징하는 은유적인 표현이고,

왕은 미륵불에 의지한 신앙으로

이 난국을 타파하였다고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민심이 극도로 흉흉해지자

왕과 집권세력은 집권층과 백성들의 단합을 위해

혜성을 이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충담스님도 월명스님과 같은 화랑이자 향가작가였다.

스님은 삼짇날(3월 3일)과 중양절(9월 9일)에는

항상 삼화령의 미륵세존께 차를 공양한 다승이었다.

경덕왕 25년(766년) 삼짇날,

휴대용 헌다구(獻茶具)와 차를 통에 담아 맨 채로 임금께 불려 갔다.

왕이 청화자 차 한 잔을 내놨다.

특이한 차 맛에 이상한 향기를 풍기는 차였다.

왕은 화랑 기파랑을 찬미한 사뇌가(詞腦歌)가 뜻이 심히 높다고 칭찬하고,

백성을 편하게 다스리는 노래를 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충담스님은 안민가(安民歌)를 지어올렸다.

임금은 아비요,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요.

백성은 어린 아이라 한다면

백성이 그 사람을 알리라. …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는 태평할 것입니다.

충담스님이 휴대용 다구로

임금도 먹어보지 못한 향기로운 차로 미륵부처님을 공양하고,

임금에게 한 잔 차와 함께 임금답기를 바라는 안민(安民)을 노래하였다.

여자를 억압한 차문화 - 봉차(封茶)

차나무는 농업이 발달한 최근세까지도

옮겨 심으면 죽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초의 선사의 ‘동다송(東茶頌)’의 첫 번째 노래에서

“천명대로 옮겨 살지 않고 남쪽에서만 자란다네(受命不遷生南國)”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중국의 차고전 ‘다소(茶疏, 許次서 지음)’에서 인용한 것이다.

차나무는 원래 옮겨 심지 못하니 (茶不移本)

반드시 씨앗에서 태어난다. (植必子生)

옮기지 말고 자식을 두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取其不移遷子之意也)

지금 사람들 역시 그 예식을 하차례라 한다. (今人猶名其禮曰下茶)

이미 16세기에 차산지인 중국의 남쪽지방에는

혼인 등의 예식에 차가 예물로 사용되고 있었다.

혼인을 하차례(下茶禮)라 하고,

신부는 차나무 같이 한 남자에게서만 자식을 낳으라는 뜻이었다.

우리나라도 언제부터인지 혼례가 정하여지면

신랑 집에서 신부집에 보내는 채단과 예장을

봉치 혹은 봉채(封采)라고 하였다.

이 봉채는 봉차(封茶)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신부집에 보내는 여러 예물과 함께 차 씨앗을 보냈기 때문이다.

신부가 신랑집으로 신행(新行)을 하면

처음 하는 일이 신랑집 사당에 제사를 올리는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을 잊고 신랑집 사람으로,

신랑집 귀신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사당 주위에 차씨를 심었다.

결혼한 여인들은

“받아들인 운명 같이 옮겨 살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신랑의 운명에 따라 살아야만 하였다.

제례나 혼례에 차가 사용되면서 다례라 하였고,

차의 특성 때문에 여자를 옮아매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 것이다.

김 동 곤 (쌍계제다 대표)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
Posted by 약초세상
728x90
[삽주뿌리]
 
[삽주뿌리]

 

삽주뿌리에는 상당한 항암작용이 있다.

중국에서는 폐암과 위암에 효과를 보았다는 기록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민간에서 위암에 좋은 효과를 본 보기가 있다.

삽주뿌리에 1.5~7% 들어있는 정유성분이

항암작용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삽주뿌리에 들어있는 정유성분은

아트락틸론과 아트락틸롤이다.

삽주뿌리에는 비타민A와 D가 들어있는데

창출에는 많고 백출에는 적다.

백출에는 이눌린, 세스쿠이테르펜,

알코올 배당체 성분 등이 들어있는데

이 성분들이 방향성 건위작용을 한다.

 

창출에는 비타민A가 많아 야맹증에 특효가 있다.

창출 60g을 물에 달여 하루 2~3번씩 한달쯤 마시고 나면

신통하다 싶을 만큼 밤눈이 밝아진다.

삽주뿌리를 이용한 치료법을 몇가지 소개한다.

 

⑴위암에는 백출 9~15g, 감초 3g에 물 60㎖를 붓고 달여

10분쯤 끓인 뒤 녹차 2g을 넣고 1분쯤 더 끓여 마신다.

하루 3번 따뜻하게 해서 마시는 것이 좋다.

녹차와 감초는 백출을 도와 나쁜 것을 없애고

새살이 잘 돋아나게하고 기력을 돋운다.

 

⑵간경화로 인해 복수가 찰 때에는

백출 152g과 탱자열매 45g으로 차를 끓여마신다.

 

⑶팔다리가 붓는 데에는 백출 20g에 대추 3~5개를 넣고

달여서 하루 3~4번 나눠 마신다.

 

⑷얼굴의 주근깨를 없애고 살결을 곱게 하려면

백출을 식초에 담가뒀다가 날마다 마사지한다.

 

⑸몸에 땀이 많이 날 때는

백출가루를 한숟갈씩 하루 2~3번 먹는다.

삽주뿌리는 중금속독을 푸는데도 효과가 묘하다.

삽주뿌리와 칡뿌리에 들어있는 펙틴이라는 성분이

몸안의 중금속을 오줌으로 빠져나가게 한다.

 

삽주뿌리는 맛이 맵기 때문에

대개 쌀뜨물에 하룻밤 담가서 기름기를 빼버리고 약으로 썼다.

그러나 삽주뿌리의 약효성분은 정유성분에 있기 때문에

껍질을 벗기고 잘게 썰어 말려서 그대로 쓰는 것이 좋다.

 

삽주의 줄기와 잎은 산나물로도 흔히 먹는다.

초여름 잎이 부드러울 때 채취, 살짝 데쳐서 말려 나물로 먹거나

밀가루옷을 묻혀 튀김으로도 먹는데 맛이 썩 좋다.

삽주뿌리로 담근 술도 맛과 향이 좋기로 이름높다.

삽주뿌리를 달인 물에 누룩과 밥을 넣고 발효시켜

막걸리를 담으면 술맛이 천하일품이라 할만하다.

 

갖가지 위장병이나 풍습성 관절염 등에

좋은 효과가 있을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삽주뿌리의 약성에 대해

`동의보감'과 `동의학사전'은 이렇게 요약했다.

 

`성질은 따뜻하고 맛이 쓰고 달며 독이 없다.

비위를 든든하게 하고 설사를 멎게하며 습을 없앤다.

또 소화를 시키고 땀을 멎게하며 명치밑이 그득하며 아픈 것과

곽란으로 설사하고 토하는 것을 낫게 한다.

허리와 배꼽 사이의 혈을 잘 돌게하며

위가 허냉하여 생긴 이질을 낮게한다.

 

…백출은 피부속에 있는 풍을 없애며 땀을 거두고

트직한 것을 없애며 위를 보하고 중초를 고르게 한다.

또 허리와 배꼽 사이의 혈을 잘돌게하여 오줌을 잘나가게 한다.

위로는 피부와 머리칼,중간으로는 심장과 위,

아래로는 허리와 배꼽의 병을 고친다'[동의보감]

 

`맛은 쓰고 달며 성질은 따뜻하다.

비경 위경 소장경 심경에 작용한다.

비기를 보하고 입맛을 돋우며 소화를 잘되게한다.

또 습을 없애고 담을 삭이며 오줌을 잘 누게 한다.

땀을 멈추고 태아를 안정시킨다.

주요성분인 정유가 중추신경에 대해

적은 양에서는 진정작용을,

많은 양에서는 마비작용을 나타내며 소화를 돕는다.

 

또한 달임약은 이뇨작용 억균작용을 나타낸다.

비위가 허약할 때 주로 쓰면 만성위염,만성소장염,체한데,

게울 때,붓는데,담음병,땀이 저절로 나는데, 절박유산, 마비 등에 쓴다.

하루 6~9g을 달임약 알약 가루약 형태로 먹는다.

[동의학사전]

출처: 최진규의 토종약초 장수법

:
Posted by 약초세상
728x90

◆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차

동의보감은 조선 선조 때의 명의

허준(허준 1546~1615년)선생이 왕명으로

15년여의 각고 끝에 동양의학을 망라한 25권 25책으로 완성한 의서이다.

동양 3국에서 모두 간행되어 동양의학의 보감으로 칭송받고 있다.

제 22~24권은 ‘탕액편(湯液篇)’으로

649개 약재의 약성, 약미, 약독의 유무 및

약효와 채취시기 등 본초학적 지식을 기록하고 있다.

한문 약명(藥名)아래에

우리가 보통 부르는 속명( 鄕藥名)을

한글로 적고 있어 초기 국어(한글)의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탕액편 고차 苦茶 항목에서 차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苦茶 : 작설차

성질은 조금 차다(微寒). 혹 냉(冷)하다고도 한다.

그 맛은 달고 쓰면서 독이 없다.

기운을 내리게 하여 오래되고

체한 것을 소화시켜주고 머리와 눈을 맑게 한다.

소변을 잘 통하게 하고 당뇨병을 그치게 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적게 하고 또 불에 덴 독을 해독시켜준다.

… 차를 마시면

심포경(心包經)과 간경(肝經)으로 들어가며

마실 때는 뜨겁게 마셔야 한다.

차게 마시면 담(痰)이 쌓이게 된다.

오래 마시게 되면 기름기를 없애주어 사람을 마르게 한다[入門].

… 어떤 사람이 거위 불고기를 좋아하여 계속 먹었다.

의사가 반드시 몸속에 옹병(癰病)이 생겨 죽을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병들지 않자 찾아가보니 매일밤 시원한 차

한 사발을 반드시 마시고 있었다.

이것이 거위고기의 독을 푼 것이다[食物].”

동의보감에는 차를 처방하거나 이용한 것이

167번의 예가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차는 기호음료이기 이전에 약인 셈이다.

탕액편의 기록대로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대소변을 잘 배설하게 한다.

소화를 돕고 기름진 음식으로 인한

비만·당뇨·열병과 두통을 치료하고 독을 풀어준다.

심장과 간을 이롭게 하나

성질이 약간 차므로 뜨겁게 마시라고 충고한다.

오래 마시면 체지방을 분해하여 사람을 마르게 한다고 적고 있다.

차는 식생활이 서구화, 인스턴트화 되어가고

활동은 더욱 적게 하여 쌓여 넘치는

영양과 지방이 문제인 현대인에게

가장 알맞은 음료라 할 수 있겠다.

동의보감의 처방 중

공부하는 학생이 먹으면 기억력이 좋아지고

머리가 맑아져 학습능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총명탕(聰明湯)’이 있다.

먼저 백복신(白茯神)을 감초물에 담갔다

딱딱한 심을 제거한 원지(遠志)를 생강즙에 담갔다가 건조시킨 것,

그리고 석창포(石菖蒲)를 같은 양으로 준비한다.

잘 말려 준비한 세 가지 약재를 곱게 가루내어

2돈 씩 차로 하루에 세 번씩 점복(點服)한다.

이 총명탕을 어린 학동들이 먹으면 그 어려운 한자를

매일 일천자씩 외울 수 있다고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임금에게 차를 처방한 예가 있다.

“중종 39년 11원 12일,

임금의 번민에 칡(葛根)·승마(升麻)·황련(黃蓮)·맥문동(麥門冬)·

인삼(人蔘)·강활산(羌活散)·오미자(五味子)·차(茶)·검은콩에

대잎 달인 물(竹葉煎水)을 첨가하여 올렸다.”

“순조 원년 11월 12일,

임금의 다리와 발에 크고 작은 발진이 솟았다.

그 달 24일 약원(藥院)에서 금은화·차·사탕 각 세 돈에

안신환(安神丸) 반 알을 조제하여 올렸다.”

◆ 미국에서 새로이 조명되는 차

2000년. 커피와 홍차를 즐기는 미국에서

차와 마늘에 관한 의미 있는 발표가 두 건 있었다.

하나는 미국국립암연구소(NCI)에서

세계인이 먹고 있는 음식으로서

항암효과가 가장 좋은 40가지 식품을 발표한 것이다.

이 40가지를 12개 식품군으로 나누어

피라미드 표로 만들었는데

이 피라미드의 위쪽에 위치할수록 항암작용이 큰 것이다.

마늘의 효능이 가장 높아 정점에 있고

두 번째 칸에 양배추와 감초가,

세 번째 칸에 당근·셀러리·파슬리가,

네 번째에 차와 양파·터머릭이 있다.

두 번째, 같은 해 미국의 유력 시사주간지 “타임”이

건강특집에서 주식이 아닌 식품으로 선정한 ‘10대 건강식품’은 녹

차·토마토·시금치·적포도주·견과류·브로콜리·

귀리·연어·마늘·블루베리였다.

녹차가 10대 건강식품이자

4대 항암식품의 하나로 발표된 것이다.

◆ 茶는 불발(不發)?!

피곤을 풀고 근심을 잊는 데는

잠이 보약이라고 주장하는 잠꾸러기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일본의 ‘사석집(沙石集)’이라는 책에

차의 효능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스님이 차를 마시고 있는데

소치는 사람이 지나다 물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차라는 것인데 세 가지 덕이 있지요.

첫째는 잠을 쫓고, 둘째는 소화를 돕고,

셋째는 불발(不發: 마음의 욕심이 발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는 것이라오.”

이 말은 들은 소치기가 말하였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는 것이 즐거움인데

잠을 이루지 못하면 곤란하지 않겠소.

항상 배불리 먹지 못하는데 소화가 잘 된다면 이 또한 곤란한 일이요.

하물며 不發하여 마누라를 껴안을 수 없게 된다니 딱 질색입니다.”고.

무릇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음식이 있고 만병통치약이 있겠는가?

차가 5천여년간 인류의 사랑을 받아 왔지만

모두가 좋아하고 누구에게나 다 좋은 것은 아니리라. <계속>

김 동 곤 (쌍계제다 대표)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
Posted by 약초세상
728x90
 
[삽주뿌리]

 

 

삽주는 중국 강소성

모산에서 나는 것이 약효가 가장 빼어나다고 한다.

명나라때 본초학자 이시진이 지은 본초강목에는

`모산의 삽주뿌리를 쪼개보면

붉은 반점에 있고 매우 진귀한 약이 된다'고 했는데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온다.

 

이시진이 모산에서 약초를 캐던 중

바위틈에서 자라는 큰 삽주를 보았다.

향기가 멀리까지 코를 찔렀으며

삽주가 자라고 있는 바위는

그 생김새가 마치 한마리 학과 같았다.

이시진은 바위를 타고 올라가 삽주뿌리를 캤다.

괭이질을 하던 중 조그마한 돌이 하나 부서져 나왔는데

그것은 바로 학의 벼슬처럼 생긴 것이었다.

 

그 돌이 빠져나오자 피가 일곱방울 뚝뚝 떨어져

이시진은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돌은

아름다운 학으로 바뀌어 세번 울며 하늘로 높이 날아갔다.

이시진이 삽주뿌리를 보니 쪼개진 면에 피빛 반점이 일곱개 있었다.

 

그뒤로 모산에서 나는 삽주뿌리는

빨간 반점이 있고 다른 곳에서 나는 것보다

약효가 월등하게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모산을 비롯해

강소성, 강서성, 안휘성 일대에서 자라던

삽주의 야생종은 이미 멸종되어

완전히 없어진 지 오래됐고 지금은 재배종만이 남아있다.

모산에서 자라던 삽주를 `좁은잎삽주'라 부르는데

좁은잎삽주는 다른 종보다 향이 더 강하고

정유성분이 훨씬 더 많아서 최고품으로 쳤다.

좁은잎삽주의 변종으로 중국삽주가 있고

또 북한에서 자라는 조선삽주가 있다.

 

남한에는 삽주 한종류만이 자라고 있을 뿐인데

조림사업으로 산에 나무가 울창해지면서

그 수가 차츰 줄어들어 이제는

야생종을 찾아보기가 쉽지않게 되었다.

남한에서 자라는 야생삽주도

중국 모산의 삽주 못지않은 약효를 지녔을 것으로 생각된다.

삽주의 약성을 창출과 백출로 나눠 설명한다.

 

창출은

①몸안의 찬기운을 없애고 땀을 잘나게하여

풍한으로 인한 감기를 치료한다.

찬바람을 쐬고나서 감기가 들어 머리가 아프고

목과 등에 땀이 나면서 아플 때에 효과가 있다.

 

②뱃속의 물기를 없애고 마비증을 낫게한다.

위속에 필요없는 수분이 많아 물이 차면 꾸럭꾸럭 소리가 난다.

이럴 때 창출을 달여먹으면 쉽게 낫는다.

삽주 20g에 물 1.5를 붓고 끓여서 하루 3~4번씩 마시면 된다.

신장기능이 나빠 소변이 잘 안나와서 몸이 푸석푸석 부을 때에도

창출 40g에 물 600㎖을 붓고 물이 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달여서

수시로 마신다.

 

풍습성 관절염으로 허리와 무릎이 붓고 아픈 것과

다리가 저리고 힘이 없을 때에도 창출고를 먹으면 좋다.

③위와 장을 튼튼하게 하여 설사를 멈춘다.

뱃속이 차가와서 음식이 소화되지않고 몸이 여윌 때,

만성장염으로 설사를 계속할 때,

밥맛이 없고 얼굴이 누렇게되며 헛배가 부르고 답답할 때 좋다.

 

④갖가지 균을 죽이는 효과가 매우 세다.

창출 40g과 쑥 10g을 같이 태우면 공기중에 있는

결핵균, 감기바이러스, 황색포도알균, 대장균,

녹농균 등의 갖가지 균을 다 죽는다.

균을 죽이는 작용은 포르말린이나 자외선보다 세다.

창출태운 연기를 가구 그릇 옷 곡식 같은 것에 쏘이면

장마철에도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다.

 

창출과 쑥을 태운 연기는

사람이나 동물한테는 전혀 해를 끼치지 않으므로

전염병이 유행할 때 감염을 막을 수 있다.

신경성피부염이나 가려움증에

창출과 쑥을 태운 연기를 쏘이면

아무런 부작용없이 신기하게 잘 낫는다.

 

백출은

①위를 튼튼하게 하고 소화를 잘되게하며

체한 것을 내리는 작용이 창출보다 세다.

②기를 보하고 담을 없앤다.

기가 허약하여 식은 땀이 날 때에는 황기, 밀기울을

더해 쓰면 약효가 더 높다.

③태아를 편안하게 한다.

겨우살이, 두충, 하수오와 같이 쓰면 더욱 좋다.

출처: 최진규의 토종약초 장수법

:
Posted by 약초세상
728x90

◆ 자생설과 전래설

우리나라에 차나무는 언제부터 자랐고,

차 마시는 풍습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우리나라 차나무의 기원을 주장하는 세 가지 설들이 있다.

첫째, 차나무의 자생설(自生說)

영산인 지리산에는 아주 먼 옛날부터

영초인 차나무가 스스로 자라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중국 구화산에서 등신불이 되어 지장보살로 추앙받고 있는

신라의 왕자 김교각(金喬覺 696~794년?)이 중국에 갈 때

황립도(黃粒稻)라는 볍씨와 금지차(金地茶)를 가지고 갔다는

기록이 있다.

자생설을 믿는 사람들은

이 때 김교각이 가져간 금지차가 우리 자생차이며,

한술 더해 우리 차의 중국전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둘째, 인도에서 불교와 함께 전래했다는 남방전래설

서기 48년, 수로왕의 허황옥 왕후가

오빠 보옥(寶玉=長遊화상)과 함께 인도에서 오면서

불교(사파석탑)와 함께 차씨도 가져 왔다는 설이다.

남방전래설은

이능화(李能和 1869~1943년)의 ‘조선불교통사’에

“김해 백월산에는 죽로차(竹露茶)가 있다.

세상에서 수로왕비인 허씨가 인도에서 가져온 차씨라 전한다”라는

기록에 기초한다.

백월산에서 수도하던 장유화상은

후에 수로왕의 일곱왕자와 지리산 화개동의

운상원(雲上院 지금의 七佛寺)으로 와서

도를 이루어 성불(成佛)하였는데,

이 주장에 따르면 지금 화개동의 차는

칠왕자가 심은 인도차의 유종(遺種)이 된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가락차의 기록이 있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 원년(661년)에 왕이

자신은 가락의 방손(傍孫)이니 끊어졌던 가락왕묘의 제사

- 가락국 2대왕인 거등왕 즉위년(199년)부터 지내오던 - 를

다시 이어가도록 명하였다.

술·단술을 빚고 떡·밥·차·과일 등

속의 제물을 차려 제사를 받들게 하였는데,

제사 지내는 날짜뿐만 아니라 제물까지도

그대로 옛것을 따르게 했다면,

거등왕 당시에 인도에서 전래한 차가 있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 중국차의 전래설

‘삼국사기’ 신라본기

흥덕왕 3년(828년)조를 보면 중국차의 전래기록이 있다.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대렴(大廉)이

차 종자를 가져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이미 차는 선덕왕 때부터 있었으나 이 때에 이르러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차를 마시는 풍습은

선덕여왕(632~646년) 때부터 있었지만

대렴에 의하여 차가 최초로 심고 재배되었다는 기록이다.

이에 따라 서기 828년을 우리나라 차의 시배년(始培年)으로,

흥덕왕명으로 차씨를 심은 지리산 화개동의

쌍계사 장죽전(長竹田)을 차시배지(茶始培地)라고 한다.

고려 이규보의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에 기록된

원효대사(617~686년)의 원효방이야기,

신문왕(681~691년)의 보천·효명 왕자가

오대산에서 문수보살께 차를 올린일,

설총이 신문왕에게 들려준 ‘화왕계(花王戒)’ 등

차에 대한 기록들이 모두 ‘삼국사기’ 선덕왕 때,

즉 대렴의 이후인 점이 ‘삼국사기’의 내용을 신뢰할 수 있게 한다.

왕명에 의해 대렴이

중국에서 차 씨앗을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것은

우리나라의 늘어나는 차수요 충족과 차문화 진흥을 위해

국가가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역사학자들에게 최초의 차재배 기록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차의 원산지와 학명

그 동안 차나무의 원산지에 관한 학설이 분분하였다.

한때는 교목이고 잎이 큰 대엽종은 인도가 원산지,

키와 잎이 작은 소엽종은 중국이 원산지라는

“차나무 원산지의 이원설”이 주장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

국의 서남쪽 운남성과 귀주성, 사천성의

3성 접경지역인 운귀고원(雲貴高原)이 원산지라는

일원설이 인정받고 있다.

차나무의 학명은

Camellia Sinensis (L)O. Kuntge로 정해졌다.

Camellia는 산차속(山茶屬), Sinensis는 중국종(種),

L은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Linne),

O. Kuntge는 독일 식물학자의 이름을 가리킨다.

차나무의 학명을 보더라도 원산지가 중국임을

세계 식물학계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차나무는

중국 소엽종으로 성목이 되어도

2~3m가 넘지 않는 관목으로 상록수이다.

◆ 茶 - 화합의 나무

음료로써의 차는 차나무의 잎으로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잎의 생김새나 품질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차나무의 독특한 생태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얀 꽃잎과 황금색 꽃술을 가진 작고 예쁜 꽃은

늦가을인 10월 중·하순에 피기 시작하여 초겨울까지 계속된다.

꽃이 지면 열매는 아주 작은 수정체로 월동을 하고

이듬해 늦가을까지 꼬박 1년을 크게 된다.

열매는 꼭 동백열매와 닮았는데,

한 꼬투리에 1~4개의 씨가 익어 껍질이 갈라져 흘러내린다.

이와 같이 차는 열매가 오랫동안 성장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식물들이 당해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자손을 남기게 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씨가 익을 때쯤이면

같은 가지에 또다시 하얀 차꽃이 피게 되는 것이다.

전 해에 핀 꽃이 열매로 익어

다음 해에 피는 꽃을 마주하게 되는 특징 때문에

예로부터 차나무를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 하고

가족·세대간의 화합을 상징하게 되었다.

가정에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차를 나누는 다담(茶談)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떠한가.

아버지가 차를 따르는 팽주(烹主)가 되어

정성스레 차를 우리고 온 가족이 따뜻한 차를 나눈다면

세대 간의 이해부족에 의한 갈등은 사라지고

사랑이 넘치는 화목한 가정이 되리라!

김 동 곤 (쌍계제다 대표)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
Posted by 약초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