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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신다

- 飮茶·煎茶·喫茶·點茶·철茶…

차문화 역사의 유구함 때문인가?

‘차를 마신다’는 여러 가지로 표현이 된다.

‘차를 끓여 마신다’는 뜻의

전다(煎茶)·자다(煮茶)·포다(泡茶)·팽다(烹茶)가 있고,

‘차를 마신다’는 뜻의

음다(飮茶)·끽다(喫茶)·철다(철茶)가 있다.

이외에 가루차를 마실 때는 점다(點茶)라고 표현한다.

모두 차를 끓이고 마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특정한 차와 상황에서만 써야하는 말도 있다.

중국의 차문화를 시대별로 나눌 때

흔히 당·송·명나라 시대로 대별한다.

당나라는 음다문화가 정착되고

육우의 ‘다경(茶經)’이 씌어진 시대이다.

이때는 주로

덩이차인 병차(餠茶)와 단차(團茶)가 많았고

차를 먼저 불에 굽고 가루낸 후 끓여서 마시는

자다법(煮茶法)이 성행하였다.

송나라 때에는 점다법(點茶法)의 시대였다.

덩이차를 불에 굽고 곱게 갈아서

가루차를 만드는 것 까지는 당나라와 같지만

물과 함께 끓이지 않고 뜨거운 물에 넣고

휘저어 먹는 점다법이 유행하였다.

말차(散茶)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마셨는데

지금의 가루차(末茶) 먹는 법과 비슷하다.

명나라는 조정에서 덩이차인 단차의 생산을

금지시키는 등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잎차의 시대가 되었다.

잎차를 끓인 물에 우려서 마시는 방법이 생겨났다.

이처럼 현대에 차를 마시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인

포다법(泡茶法)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오랜 기간 같은 차문화를 공유하였다.

당나라와 동시대인 신라에서도

덩이차를 자다법으로 먹었는데

신라의 유적인 화개 쌍계사의 국보 47호

진감선사비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시대별 차문화를 표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표 참조>

지리산에 남은 신라의 茶香

다시 중국차(漢茗)를 공양하는 이가 있으면

돌솥에 섶나무를 지펴, 가루내지 않은 채로 끓여 마시며 말하기를,

‘나는 이것이 무슨 맛인지 알지 못한다. 단지 배를 적실뿐이다’하였으니

참됨을 지키고 속됨을 싫어함이 다 이러하였다. - 진감선사비

혜소 진감국사(慧昭 眞鑑國師, 774~ 850년)의 비문에 있는 내용이다.

선사는 당나라에 27년간 유학한 선승으로

불교 조계종의 종조(宗祖)인 도의선사와 함께 수행하기도 하였다.

830년 귀국하여 지리산 화개동으로 와서

옥천사(쌍계사의 전신)를 창건하였으며,

중국의 선과 차문화 그리고 범패를 전한

우리나라 범패 종장(宗匠)이기도 하다.

비문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짓고 썼으며,

문장과 글씨가 너무나 훌륭해서

중국에 까지 알려져 서예독복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비문의 중국차(漢茗)라 한 것은 토산차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누군가가 선사의 실생활이 검소함이 안타까워

향과 차라도 최고급 호향(胡香)과 중국차를 쓰라고 공양하였으나

선사는 속된 세속의 가치에 초연해 근본을 지키면서

실체를 얻는 생활을 한 것이다.

향 피우면 마음이 경건하여지고

차 마시니 배를 곱고도 윤택하게 적실뿐이라!

신라 당시의 음다법은 덩이차를 가루내어

자다법으로 다리는 방법이었으나,

선사는 덩이채 돌솥에 넣고 섶나무를 태워 끓여 마셨다.

세속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으나 참됨 - 진솔함을 지키고

속됨을 싫어함(守眞오俗)의 수행자다운 다풍(茶風)을 보인 것이다.

팽주(烹主)와 다각(茶角)

충성을 다해 토끼를 쫓던 사냥개도

토끼를 잡고나자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고사가 있다.

그래서 ‘烹’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인가 어감이 좋지 못한 단어가 되었다.

언젠가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서

팽주(烹主)라는 말을 더 이상 사용 말자는 주장들이 있었다.

팽주는 차를 다려내는 사람, 즉 찻자리의 주인을 말한다.

차의 색향기미(色香氣味)를 온전히 담아낼 물을

정성스럽게 끓여 차를 다려내는 사람이다.

이들이 팽주대신 사용하자고 했던 용어가 다각(茶角)이었다.

다각은 원래 총각(總角)에서 유래한 말로,

중국의 청소년들이 머리를 정수리 양쪽에

뿔같이 묶고 다니면서 생긴 단어이다.

다담(茶啖)·다례(茶禮)·다게(茶偈)·

선다(禪茶)·다비(茶毘) 등의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차는 불가(佛家)와 인연이 깊은 물건이다.

스님들의 직책을 적은 용상방(龍象榜)과

초파일이나 큰 다례 때 공양물과 음식을 준비할 임무를 정한

육색방(六色榜)에 ‘다각’이란 직책은 빠지지 않는다.

다각은 사찰에서 차와 군음식(간식)

즉 다반(茶飯)을 책임질 젊은 스님을 말한다.

권모술수가 횡행하고 팽 당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밝고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으니,

맑고 향기로운 차를 끓이는 사람을

팽주라 호칭하기보다는 다각이 더 어울린다는 주장이다.

다각이 아니더라도 큰스님을 모시는 시자(侍子)는

언제든지 차를 낼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매일 반복적으로 행하는 쉬운 일을

다반사(茶飯事)라 하지 않는가?

선가(禪家)에서는 차마시듯하는

다반사의 평상심(平常心)이 도라고 가르치고 있다.

김동곤 (쌍계제다 대표)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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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