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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백합과의 여로속(Veratrum) 식물로는

박새, 여로와 은방울꽃속(Convallaria)의 은방울꽃이 대표적인 독초이다.

 

여로, 박새에는 살충작용이 있는 veratramine 성분이 있으며,

은방울꽃에는 강심배당체인 convallatoxin, convallatoxol, convallaoside 등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이들 성분들은 유독하여 자연에서 바로 섭취하면

부종, 오심, 구토, 위장관 장애, 감각마비, 저혈압과 같은 중독증상이 나타난다.

 

*백합과식물의 형태적특성

백합과 식물의 열매는 삭과 또는 장과이고 꽃차례는 여러송이의 꽃으로 이루어지며,

총상, 산형, 이삭, 원추 또는 꽃차례의 형태를 가진다.

 

*백합과식물의 유독성분

veratramine, convallatoxin, convallatoxol, convallaoside

등의 알칼로이드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백합과식물 중독사례

2005년 4월 24일 서울에서 이웃주민이 가져온 시금치 모양의 산나물을

삶아 쌈을 함께 먹던 주민 6명이 갑자기 구토와 심한복통을 호소했으며

일시적으로 호흡곤란과 저혈압증세가 나타나 병원으로 긴급후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이들이 먹은 풀은 독성이 강한 [박새]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5월 15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모사찰에서

점심식사를 한 스님과 신도 47명이 심한구통와 복통을 호소,

인근 5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이들은 독초인 [박새]를 산마늘로 알고 먹은 뒤 이같은 증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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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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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향나무는 1990년대 후반

아파트가 들어설 때에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었던 적이 있다.

이 향나무는 당시에 어느 개인주택의 마당 끝에 자라고 있었다.

아파트 시공회사는 이 향나무를 뽑아내야 공사를 할 수 있다고 하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지켜 준 나무를 없앨 수 없다면서 반대하였다.

그래서 이 향나무는 아파트 공사 중에 잠시 자리를 떠났다가

공사가 마무리 된 후에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결국 이 향나무가 마을을 지켜준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이 향나무를 지켜준 셈이 되었다.

 

 

시흥시 하중동의 관곡마을에 고목의 향나무가 있다.

보호수의 향나무이다. 보호면적은 30㎡이다.

이 향나무는 수령이 1,000년이라 기록하고 있다.

나무 나이에 비하여 외부형태가 곱게 보였지만 믿을 수밖에 없다.

오래된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생육이 양호하다.

약간 휘어진 굵은 줄기와 옆으로 뻗은 가지의 형태가 아름답다.

이 향나무는 이 마을이 생길 때에 식재한 나무라 하여 신성시하고 있다.

마을을 지켜주는 신목으로 생각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음력 정월에 길일을 택해서

이 향나무 앞에서 마을의 안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고 있다.

이 향나무는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보다 도심이라 하는 편이 좋겠다.

아파트가 즐비한 곳의 도로 옆에 작은 공원이 마련되었고,

그 공원의 동산에 우뚝 솟아 있다.

일설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의

이 향나무와 관련한 꿈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열병(장질부사)으로 고생하거나 목숨을 잃어가고 있을 때였다.

이 마을 출신의 권씨 성을 가진 사람이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마을을 향하여 몰려오는 꿈이었다.

권씨는 열병을 가진 아이들을 물리치지 않으면

마을 전체에 병원균이 돌아 큰 일이 날 것 같았다.

그때 그는 아이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는 아이들이 잘 볼 수 있는 동산 위의 향나무에 올라가서 호통을 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향나무에 걸터앉아 호통과 함께 지팡이를 흔들며 아이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랬더니 그 많은 아이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후 며칠이 지나자 열병이 멈추고 마을이 평온해졌다.

한편 인근에는 향토유적으로 알려진 관곡지(官谷池)가 있다.

이 연못은 조선시대 강희맹이 세조9년 명나라에 갔다가

올 때 가져온 연꽃 씨를 처음으로 심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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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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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마을의 풍경이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뒷동산이 있고 사방이 트인 시골 풍경이었으나

지금은 아파트단지가 높게 들어선 곳이 되었다.

이곳은 천년수의 은행나무가 있는 동두천시 지행동이다.

이 은행나무 바로 옆의 공터는 현재 새로운 아파트단지 공사로 분주하다.

오래 살고 있는 이 은행나무는 조선시대 세조 때의

어유소(魚有沼, 1434䠭1489) 장군이 어릴 때에 이 은행나무 곁에 단을 쌓고,

그 곳에서 학문과 무예를 닦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래서 어유소 장군의 후손들은 이 나무를 조상의 얼을 기억할 수 있는 증거로 삼아

오래도록 귀중하게 지켜왔다.

이 은행나무는 매우 영험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은행나무는 조선의 고종 인산일(因山日)에 큰 가지를 스스로

내려놓으면서 온 나라에 찾아든 슬픔을 함께 슬퍼하면서

백성의 안녕을 걱정하였다.

6.25한국전쟁 때에는 큰 가지가 저절로 부러지는 등

국난을 미리 예견한 것으로 전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은행나무를 신목으로 여기고 있다.

사람들은 이 은행나무 아래에서 좋지 않은 일을 하지 않으며,

남을 비방하지도 않는다.

마을에서는 이 은행나무 곁에서 수신제(樹神祭)를 지낸다.

수신제의 이름은 지행동 ‘행단제’이다.

행단제는 한 해의 시작이 아니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행해진다.

해마다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어 마을을 환하게 밝히는

10월 상달 초하루에 나무 앞에 모여 굿을 올리는 것이다.

10월은 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계절이기도 하고,

농사일로 살림살이를 이어가던 사람들이 한해를 잘 마무리하는 시기인 동시에

갈무리한 알곡을 제물로 올릴 수 있는 시기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행단제는 이제 지행동 마을을 넘어

동두천시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대표적 마을 축제가 되었다.

그래서 행단제는 지역의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두천시 관계자, 동두천을 대표하는 문화단체인,

시민들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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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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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가 왜 이럴까.

줄기가 위로 곧게 뻗은 것이 있는가 하면 구불구불한 것도 있다.

줄기가 아래로 처진 것도 소나무도 있고, 꼬인 것도 있다.

수형이 둥그스름하게 모양을 갖춘 종류도 있다.

밑동에서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소나무도 있다.

분류가 참으로 어렵다.

밑동에서 줄기가 갈라지는 소나무 종류도 또 다시 세분하고 있다.

여러 줄기가 지표면 가까이에서부터 갈라지면 다행송(多幸松)이라 하고,

지표면 위쪽 줄기에서 갈라지면 반송(盤松)으로 갈라본다.

비슷한 말로 다지송(多枝松), 천지송(千枝松), 만지송(萬枝松),

조선다행송 등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아무렇든 강화도에 특이한 소나무 종류가 있다.

아름드리의 줄기를 가진 것이 아니지만 오래도록 살고 있는 소나무 종류이다.

선원면 냉정리의 선원초등학교에 있다.

선원초등학교는

1922년 선원보통학교 설립인가를 받고, 1923년 4월 2일 개교한 학교이다.

이 학교의 교목이 ‘천지송’이다. 건물의 정중앙에 심어진 것이다.

이 천지송은 이 학교의 상징목이다.

이제는 학교 전통만큼이나 학생과 교직원, 지역 주민들의 큰 자랑거리가 된 나무이다.

이 천지송은 선원초등학교 1회와 2회 졸업생이 기념식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 이 천지송은 어떤 나무일까.

모양이 특별난 소나무 종류이다.

줄기가 지표면 가까이에서 갈라지므로

다행송이라 해야 하지만 흔히 반송이라 부르고 있다.

여기에서는 반송이라 부르기로 한다.

이 반송은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이 반송은 200년의 세월동안 잘 자라고 있다. 교정에서도 오래도록 살고 있다.

어린 학생들이 입학과 동시에 6년 동안 함께 하였던 나무이다.

아이들은 술래잡기를 하며 이 반송 주위를 여러 번 돌아다녔을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뭐가 그리 재미가 있는지 열심히 뛰어 다녔을 것이다.

어렸을 때의 학교 운동장이 너무 크게 느껴졌던 것처럼

어린 학생들은 이 반송과 함께 하면서 얼마나 크고 위용스럽게 보였을 것인가.

어느 장난꾸러기 학생은 다칠까봐 훈계하는 선생님의 말도 듣지 않고

이 반송에 올라가 놀기도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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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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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흔히 자라는 미나리아재비과 초오속(aconitum) 식물로는

오두(부자), 투구꽃(초오), 이삭, 진범, 미나리아재비 등이 있다.

이들 식물에 함유된 아코니틴은 성인의 경우 피하주사 3~4mg이 치사량이고,

생약 자체의 경우 한번에 5g 이상을 물에 달여 복용하면 위험하다.

부자나 초오에 중독되면 입과 혀가 굳어지고 손발이 저리고 비틀리며

두통, 현기증, 귀울림, 복통과 구토, 가슴떨림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초오속 식물의 덩이뿌리중 오두는 중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수입되어

재배되고 있으며, 일부가 야생화 되어있다.

그 모근은 천오, 자근은 부자라하여 약용으로 쓰이고 있으며,

놋자가락나물의 덩이뿌리는 초오, 노랑돌쩌귀의 덩이뿌리는

백부자라는 한약재로 사용해왔다.

이들 약재는 약리작용이 강렬하여 무독화하기 위한 가공과정을 거친다음

약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자연에서 채취하여 바로 식용할 경우 매우 위험하다.

*미나리아재비과 식물의 형태적 특성

위 꽃받침이 투구모양이고 뿔이 있거나 없으며,

꽃은 좌우 대칭, 잎은 손바닥 형태를 갖는다.

*미나리아재비과 식물의 유독성분

독성물질인 aconitine, mesaconitine, apaaconitine등의

알칼로이드계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미나리아재비과 식물의 중독사례

2006년 3월 10일 경기도 연천에 사는 마을 주민 20명이

투구꽃(초오)를 넣어 집에서 담근 술을 나누어 마시다가

집단 중독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며,

일부 환자의 경우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져 중환자실에 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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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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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둥구나무에서 놀던 추억이 그리운 사람들이 많다.

둥구나무는 무더운 한여름에 시원한 그늘과 휴식의 장소를 제공하였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을 찾았다.

아이들은 낮잠 자다 말고 그냥 둥구나무로 갔다.

친구들 만나는 장소처럼 그냥 보고 싶어 둥구나무로 갔다.

심심하여 할 일이 없어도 그냥 둥구나무를 찾아 갔다.

둥구나무 아래는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며 노는 곳이었다.

아줌마들은 이런저런 동네 사람이야기를 늘어놓았던 곳이 둥구나무 아래이었다.

땅따먹기, 공기놀이, 고누놀이를 하며 놀았던 곳이다.

교동도 양갑리에도 둥구나무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해나무’라 부르는 커다란 느티나무이다. 보호수이다.

이 느티나무는 단옷날에 처녀 총각들이 동아줄을 꼬아 그네를 만들어 놀았던 나무이다.

다른 동네 사람들도 지나다 그네를 뛰었다.

젊은 아줌마들이 타는 쌍그네는 그야말로 그네뛰기의 최고 멋이었다.

높이 올라 느티나무 잎을 입으로 따서 물고 내려오는 그네 기술은 최고의 멋이었다.

이 느티나무는 마을의 당산목이기도 하였다.

나뭇가지 하나 마음대로 자르는 것을 두려워하였던 신목이었다.

또한 이 느티나무가 자라는 곳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양갑리에서

산세나 지세로 보아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부자가 되는 최고의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양갑리 마을에는 부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이 느티나무는 만세운동이 일어나던 1919년(기미년) 여름에 가지가 꺾어지기도 하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당시 태풍으로 직경 50cm 정도의 몇 가지가 잘렸다.

그 후 가지가 자라나 오늘날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이 느티나무는 교동도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말없이 묵묵히 지켜보았을 전설의 느티나무이다.

또한 봄에 나뭇잎이 일제히 피었다가 가을에 잎이 일제히 떨어지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않으면 그해 농사가 흉작이 든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영농기술이 발달하면서

민간에서 이어지는 전통지식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구전은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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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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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와 인접한 곳에 교동도가 있다.

교동도는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한의 연백군과 마주보는 대한민국의 섬이다.

한반도에서 14번째로 큰 섬이다. 화개산(華盖山, 269m)이 가장 높은 산이다.

교동도는 강화도 창후리선착장에서 월선포선착장까지 15분 동안 배를 타고 다녔다.

물때가 나쁜 날은 수심문제로 멀리 돌아야 해서 1시간이 걸리기도 하였다.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된 후 출입이 한결 쉬어졌다.

그래도 최전방의 섬인지라 검문소에서 외부인의 출입 확인을 거치고 있다.

이웃 강화도와 석모도가

간척으로 현재의 해안선을 가졌듯이 교동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화개산, 수정산, 율두산이 만드는

삼각점 사이의 갯벌과 바다를 메워서 넓은 농경지를 얻었다.

교동평야를 만들었던 것이다.

교동평야의 끝자락에 바닷가와 인접한 난정저수지가 있고,

그 인근 마을에 고목의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다. 보호수이다.

이 은행나무는 교동면 무학리에 있다.

무학리는 고려 중엽에 무산서리라 불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은행나무를 ‘무산서리 천년수’라 부르기도 한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은행나무는 마을의 한 가운데에 버티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잘 사는 부잣집의 뒤쪽에 은행나무가 있었다.

어느 날 부잣집은 화재가 났다. 그때 은행나무도 함께 불에 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 은행나무는 줄기 속까지 불에 타지 않고 겉의 잎가지만 불에 타서 그런지

이듬해 봄에 새가지가 나오고 잎이 돋아나서 자랐다.

이 나무가 현재 무학리의 천년수 은행나무이다.

지금도 은행나무 주변을 파면 숯과 부잣집의 기와조각이 나온다.

그리고 은행나무에서 놀다가 떨어진 사람은

떨어진 곳을 파내었을 때에 나오는 숯을 달여서 약으로 이용하였다.

아픈 곳이 신통하게 나았다. 이 은행나무는 신목으로 숭배되고 있다.

마을의 동제를 지내지 않지만 마을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정월대보름에 치성을 드리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무속인들이 종종 찾아와 푸닥거리를 하거나 신내림을 받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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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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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늘 푸르게 자라는 상록수 중 가장 오래 자라는 나무가 서초동에 있다.

향나무이다. 보호수이다. ‘마뉘꿀(마뉘골) 고개’를 지날 즈음에 있다.

이 고개는 강남고속터미널에서 대법원으로 고갯길을 넘어가다

국립중앙도서관 고갯길의 작은 돌에 글씨를 새겨 안내하고 있다.

‘옛날 반포동 계곡에 마뉘골이라는 마을이 있어서 불린 고개로

호랑이나 산적들이 자주 나타날 정도로 으슥한 곳이었다 함’이라 적혀 있다.

보호수의 향나무는 이곳의 바로 옆 서초사거리에 있다. 서초역이다.

이 향나무는 교차로 한가운데에 서서 밤낮으로 오가는 차량 행렬을 내려다보고 있다.

대부분 법원이나 검찰청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의 어두운 표정을 지켜보고 있다.

이 향나무는 고려 태조 왕건의 후손이

나라의 발전을 기원하기 위하여 심었다는 설화가 구전하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온갖 비바람을 견뎌내며 서초동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개국을 지켜봤으며,

1457년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로 귀양을 가던 모습도 지켜보았다.

단종은 이 향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 영월로 유배를 갔다.

이후 인근에 사는 백성(주민)들이 이 향나무를

수호신으로 삼아 각별히 관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예전에는 어느 동네의 수호신이며 신목이었던 셈이다.

이 향나무가 있는 곳은 예전에 유명인의 집터이었다.

대법원이 들어서고 도로가 나면서 집이 철거되었으나

정원의 향나무는 오랜 논란 끝에 살려 두었다.

오래된 나무를 베면 화를 입는다는 이야기에다가

수령이 오래된 아름다운 나무를 보호하자는 의견도 있어서

결국 살아남게 되었다.

그 후 이곳의 향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1968년 보호수로 지정된 이후 ‘서초동 향나무’ 또는 ‘대법원앞 향나무’ 등으로 부르다가

2009년 11월 시민공모를 통하여 ‘천년향’의 이름을 얻었다.

관계기관은 명명식까지 성대하게 치르는 등 대접을 해주었다.

매년 정기적으로 청소도 하고 영양분도 투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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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