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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42세의 부인이 수년전에 음식상 飮食傷을 당한 후,

점차 황달이 발하여 전신이 노랗고 소양감이 심하며

음식소화가 어렵고 항상 포만하며

피부와 안면이 점차 흑색으로 변하고

눈이 침침하여 잘 보이지도 않아서

가족에게 손을 잡혀 맹인 상태로 내원하였다.

진찰한 결과, 곡달증으로 단정하고 소양이 심하므로

소달건비탕 消疸健脾湯에 인진 茵蔯 3돈과

백선피 白鮮皮, 사상자 蛇床子 各1돈을 가하여 투여하였다.

20첩 복용 후에 전신의 흑색이 점차 황색으로 변하면서

소양감이 없어지고 소화가 잘 되어 복용후에 시력이 회복되고

1개월 후에 완치되었다.

消疸健脾湯은 諸疸을 通治하며 穀疸로 飮食이 消化되지 않으며

不能飮食하고 煩心하며 胸腹脹滿하는 諸證에 쓴다.

食遠服. 처방구성은 다음과 같다.

香附子, 茵蔯 各2錢,

山査肉 一錢半, 蒼朮, 白朮, 厚朴, 陳皮, 豬苓, 澤瀉, 赤茯苓 各一錢,

山梔子, 蘿葍子, 藿香, 半夏 各七分,

三稜, 蓬朮, 靑皮, 大腹皮, 甘草 各五分,

生薑 三片.

(崔錫柱 편저, 『月海 새方藥整理』, 해진출판사,

2015의 消疸健脾湯에 대한 ‘雲溪 治驗例’)

 

부연설명

김정제(金定濟) 교수 敎授(1916∼1988)는

한국 한의학의 정체성을 정립한 巨木이다.

호가 雲溪로 1963년 대한한의사협회장으로

6년제 한의과대학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東洋醫藥大學의 관선이사장직을 맡았으며,

1965년 동양의약대학이 경희대학교로 합병되자

경희대학교의 교수로 취임하여 후학들의 교육에 힘쓰기 시작하였다.

위의 醫案은 김정제교수가

穀疸을 치료한 경험을 최석주선생이 기록해놓은 것이다.

곡달에 대해서 최석주선생은

“황달이 있으면서 음식을 먹으면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증상으로

흉복창만과 善飢(배가 쉬이 고파짐)도 발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消疸健脾湯에 대해서

“모든 황달병에 통용되나 그 목표는 소화불량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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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최○○. 50세. 남자. 120일간 치료함.

증상은 간장종대(肝臟腫大), 복수(腹水), 황달(黃疸), 不食 등으로

양방병원에서 2개월내 사망할 것으로 판정했음.

이에 加減淸肝湯을 4개월간 투여하여 완치시켜 이후

7년이 지났음에도 건강상태 이상없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음.

1975년 한의사치험보감에 나오는

장봉균의 간경변증안 기록

加減淸肝湯

柴胡 四錢, 白芍藥, 靑皮, 貝母 各二錢,

蒲公英, 蒼朮, 茵陳蒿 各一錢半,

防己, 三稜, 蓬朮, 山査, 枳實, 白芥子炒, 白蒺黎炒,

草龍膽, 赤茯苓, 車前子, 半夏 各一錢,

沒藥, 梔子, 黃芩, 牡丹皮, 甘草 各五分.

(『漢醫師治驗寶鑑』, 漢醫師治驗寶鑑編纂部, 韓國書院, 1975)

 

부가설명

장봉균(張奉均) 선생은 1922년 전남에서 출생하여

전라북도 여수시 중앙동에서 張한의원을 개원하였다.

원불교를 가교로 하는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서예에도 출중하였다.

동서의학연구회 이사로서 제3차 세계침구학술대회에

논문을 발표하여 한국 한의사의 저력을 과시하였다.

여수체육회 태권도회장으로 체육인으로서도 활동하였다.

1959년 5월 5일 광주시 불로동 동강한의원에서

전라남도한의사회가 창립될 때 초대회장 김상욱(광주)과 함께

부회장에 류훈(목포) 장봉균(여수)이 선출되어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62년 5월 16일

여수지구 3개 분회(여수시, 여천군, 순천시)가 설립되었을 때

초대 3개 분회장에 장봉균선생이 선임되었다.

그는 조선대학교 행정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하였고,

재건국민운동 여수시 위원장, 여수 서도회 회장,

원불교 여수 지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위의 醫案은 肝硬變症으로 진단받아

생명이 위독한 50세 남자를 120일간 치료하여 완치시킨 기록이다.

주된 증상은 肝臟腫大, 腹水, 黃疸, 不食 등이었다.

加減淸肝湯은 『동의사상요결』에 나오는

태음인 두통을 치료하는 같은 이름의 처방과는

다른 처방으로서 장봉균선생의 창방으로 볼 것이다.

이 처방은

加味逍遙散 맥락의 白芍藥, 白朮(蒼朮로 代), 白茯苓, 梔子, 甘草와

龍膽瀉肝湯에 해당하는 草龍膽, 柴胡, 車前子, 黃芩, 梔子,

甘草(『醫宗金鑑』의 경우) 등을 합방하고 여기에

三稜, 蓬朮, 山査, 枳實, 白芥子炒, 白蒺黎炒 등을 가하여

새로운 처방을 만들어내고 있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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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병명: 폐결핵. 연령: ○세. 성별: ○.

이름: ○○○. 치료기간: ○일간 完治.

폐결핵 처방

 

山藥, 山茱萸, 白茯苓, 牡丹皮 溫水浸,

白芍藥 米泔浸, 栢子仁, 蓮子肉 溫水浸, 唐木香 溫水浸,

白何首烏 酒浸 各三兩.

甘草, 鹿茸, 黃芪煆 酒浸 各一兩.

梧子大蜜丸 1일 3회, 1회 30환 복용.

(『漢醫師治驗寶鑑』, 漢醫師治驗寶鑑編纂部, 韓國書院, 1975)

 

부가설명

오승환(吳承煥) 先生(1935∼1996)은

국제동양의학회의 결성을 이루어낸 제14대 한의사협회장이다.

충남 예산 출생으로 경희대 한의대 14기로 입학하여

졸업후에 원광대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고

대한한의사협회 14대 회장으로 1976년부터 2년간 봉사하였다.

그는 한의계에서 중요 요직을 거치면서 한의학 발전에 솔선하였다.

국제동양의학회 사무총장, 명예회장, 원광대 한의대 교수 및 병원장,

광동한방병원장, 대한한방병원협회 회장,

대한한의사협회 명예회장 등이 그것이다.

위의 醫案은 그가 폐결핵을 평소에 치료할 때

많이 사용하여 효과를 거둔 처방을 가설하는 형식으로 작성한 것이다.

위의 처방에서 『東醫寶鑑』虛勞門의

神仙巨勝子元과 火門의 淸離滋坎湯의 일부 主劑를

여러 가지로 加減하여 새로운 처방을 창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吳承煥이 전문으로 한 질환은 糖尿病이었다.

그는 糖尿病을 上消는 心火에서 오고 中消는 胃火,

下消는 精不足에서 오므로 除風之劑와

精을 도와 생산시키는데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그의 학술적 성취는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나타나는

肺結核을 치료하는 방법론과 연계되어

그의 치료적 방법이 드러나게 된 것이리라.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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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967년 12월. 서대문구 중림동에 거주하는 당년 12세 되는 여자아이다.

심한 두통이 있었고 TV를 보다가 별안간 실명이 되고 하지도 마비되어

모 의대에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십이대 신경중 시신경과 운동신경의 장애로 그리된 것이니

뇌수술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었다.

원래가 한약을 좋아하는 사람이므로 수술을 찬성치 않고

여러 한의원을 찾아다녔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나의 한의원(성신한의원)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당초에 병이 난치라고 보았기 때문에 자신은 없으나

한번 착수해보겠다는 의욕이 생겨서, 곰곰이 생각한 끝에

변증기문(辨證奇聞)을 내놓고 두통문(頭痛門)을 찾아보니

구뇌탕(救腦湯)이라는 처방이 있는데,

辛夷 三錢, 川芎 一兩, 細辛 一錢, 當歸 一兩, 蔓荊子 二錢 水煎服一劑而痛止라고 하였기에

우선 한첩을 투여하면서 하루에 복용할 것을 명하였다.

「辨證奇聞」은 “頭痛連腦하고 雙目赤紅하며, 如破如裂하는 것은 眞正頭痛인 것이다.

이 病이 한번 發하면 救하지 못하는 法인데, 대개 邪가 腦髓로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邪가 腦에 있음은 邪가 心과 五臟을 犯한 것과는 달라,

治法만 정당하다면 또한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제 한 奇方을 傳하여 救世함에, 세상에는 頭痛을 患함이 없을 것이요.

어찌 특히 한사람만 救하였겠느냐?”라고 말하고, 救腦湯을 처방하였다.

(「醫林」제 94호, 1972년. 내용의 일부를 축약하는 과정에 생략된 부분이 있음.)

부가설명

이성숙(李聖宿) 선생님(1907∼?)은 1972년 大韓運氣學會 회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1952년 한의사 시험에 합격하고 1969년에는 한지의사에도 합격하여

한의와 양의 두 의학을 모두 이해하는 인물이었다.

위의 醫案은 頭痛, 眼盲, 下肢麻痺 등의 증상을 나타낸 12세의 女兒를 치료한 기록이다.

그는 이 증상에 “頭痛連腦, 雙目赤紅”에 쓰는 救腦湯을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음을 인식하기 하였지만 처방의 메커니즘이 일맥상통한다고 인식하고 이 약을 투약하였다.

아울러 약을 주면서 肝兪와 太衝, 手三里, 足三里에 10분간 留鍼하였는데,

足三里에 침을 꽂는 순간 “눈이 갑자기 보인다”는 환자의 歡聲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李聖宿 先生은 救腦湯의 효과에 대해서

“細辛, 蔓荊子는 頭痛을 치료하는 약이다.

그러나 직접으로는 腦內에 들어갈 수는 없고

辛夷의 引經藥을 得하여야만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細辛, 蔓荊子, 辛夷 三味가 다 耗氣시키는 藥이고, 川芎도 같이 쓰게 된다.

그래서 頭痛은 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辛散을 過하게 시키면 邪氣도 散하면서 辛氣도 또한 散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補血시키는 當歸를 加入하면 氣血이 두루 一身에 通하여

邪氣가 스스로 頭上에 獨留하지 못할 것이다.

邪氣가 이미 頭上에 留하지 못하면

頭痛이 낫지 않음이 없을 것이므로 나는 當歸를 合해서 쓰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足三里는 頭痛, 眩暈, 上氣 등 氣逆의 증상에 사용하는 特效穴로서

환자의 증상을 그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단서가 된다.

김남일/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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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50세의 여자. 강○○.

신체는 건강한 편이고 성격은 내향적이며 생활환경은 부유한 계층.

5∼6년전부터 耳下項側에 結核이 발생하여 계란보다 더 크고 음식물을 넘기는데에도 지장이 있어서

병원에서 진료한 결과 갑상선종대(甲狀腺腫大)라고 하며 수술하는 수밖에 없다 하므로

수술을 받아 종대를 제거하여 그 때는 괜찮았으나 5개월도 안되어서 새로이 발생하여

지금 수술만하고 음식물을 삼키는 데에도 조금 지장이 있으며 외관상 창피하여 고민 중인데

이 한의원에서 수술하지 않고 한약으로만 고친다는 소문을 듣고 내원하였다고 한다.

3대증이 없으니 바세도우씨병은 아니고 단순성 갑상선종대이다.

3개월 이상 약을 먹을 의지가 있으면 틀림없이 치료된다고 하였더니

낫기만 하면 1년이라도 좋으니 좀 고쳐달라고 호소한다.

p.s:바세도우씨병(갑상선 기능 항진증)의 삼대증은

안구돌출, 갑상선종대, 심장박동 등이다.

1963년 11월 20일경부터 투약치료를 시작하였다.

처방은 십육미유기음(十六味流氣飮)에 청피 1돈, 모려분 2돈(靑皮一錢, 牡蠣粉二錢)을 더하여

30첩을 복용하고 부산에 있는 딸의 산후관리로 약복용을 중단할 수가 없으니

환약(丸藥)을 조제하여 달라고 요구하기에 소핵환(消核丸) 1제를 주어 복용케 한 결과

그 후 약 15일만에 와서 환약을 복용하는 중 그 결핵(結核)이 쑤시고 아프며

목전체가 부풀어 부산에서 한약 5첩을 복용해 보았으나 별 차도가 없었다고 한다.

또 종전의 처방대로 계속 2개월 반을 복용시켰더니

그 핵(核)자체도 물러지고 그 모양도 많이 적어졌다.

그래서 약복용을 중지시키고 기다려보라 하였더니

약 2개월만에 몸살약을 지으려 내원하여 얼굴색이 좋고

병의 완치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하기에 종대가 있던 곳을 만져보니

피부 속에 그 핵이 조금 있는 듯하나 외관상으로는 완전히 흔적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대한한의학회보」제2권 제6,7합병호. 통권12호, ‘臨床落穗’, 1964년 7월 1일)

부가설명

이 醫案은 甲狀腺腫大證을 十六味流氣飮으로 치료한 기록이다.

蔡仁植 선생(1908∼1990)은 동양의약대학, 경희대 한의대 교수 등을 역임한

고전 의서에 능통한 상한론의 전문가이다.

十六味流氣飮은 蘇葉, 人蔘, 黃芪, 當歸, 川芎, 官桂, 厚朴, 白芷, 防風,

烏藥, 檳榔, 白芍藥, 枳殼, 木香, 甘草, 桔梗 등 16개의 약물로 구성된 행기제이다.

消核丸에 대해 蔡仁植 교수는

“橘紅, 赤茯苓, 大黃, 連翹, 黃芩, 梔子, 半夏麯, 玄蔘, 牡蠣童浸淬, 天花粉,

瓜蔞仁, 桔梗, 白殭蠶, 甘草節 爲末 蒸餠和丸, 綠豆大 白湯下 八九十丸 日二回”라고 설명하고 있다.

蔡仁植 교수는 이 증상이 치료된 것은 十六味流氣飮의 효과 때문이며,

消核丸은 효과를 내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약물의 내용만 가지고 본다면 消核丸은 消炎性去痰劑이고

十六味流氣飮은 奶岩, 結核 初期에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김남일/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실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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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김○○. 27세. 남자. 농부.

병력: 20세 때에 폐렴을 앓은 후에 치료되어 건강하였다.

증상: 1951년 7월 중순경 입맛이 없고

가슴과 배 사이에 신경통처럼 증상이 일어나며 여기에 미열, 가래에 피가 보이며

기침이 날 때에는 우측옆구리에 찌르는듯한 통증이 일어나는 동시에 선홍색의 피를 토하였다.

진찰시 증상: 열은 37.2. 맥박수는 85(浮洪脈)이고, 타진상 변화는 별로 없고,

청진상 오른쪽 등부분에 약간의 水液音이 들이고, 골격은 중간정도이다.

진찰과 치료: 陰虛火動(肺門淋巴腺炎)이라고 상정하고

처방을 滋陰降火湯으로 정하고 加하기를 瓜蔞仁, 貝母, 五味子, 阿膠珠하여

10첩을 5일간(一日 두첩)을 連服시켰더니 胸肋間 神經痛은 약간 差效가 있으니

반대로 咳血은 尤甚하였으므로 枇杷葉散에 丁香을 去하고 黃連 一錢을 加하여

1일 두첩씩 계속 7첩을 복용시켰더니 完治되지 못하므로 이어서

淸暑益氣湯 10첩을 복용시켰더니 完快되었다.

(「醫林」제2권 제6호, 1955년 6월, 17쪽 ‘臨床治驗의 待合室’)

부가설명

韓南洙(1921〜1997) 선생은 物理論으로

한의학의 원리를 규명하고자 노력했던 광주광역시에서 활동한 한의사이다.

韓南洙는 “咯血의 종류는 咳血, 嗽血, 唾血 등이 있는데,

咳血이란 것은 咳가 있고 肺에 속하며 恐難嚥이요,

嗽血이란 것은 嗽痰液에 血液이 帶하며 脾經에 根本을 둔 것이요,

唾血이란 것은 血液에 따라 唾가 나오며 腎에 나오는 것이며,

咯血이란 것은 咯에 따라 血液이 系帶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肺腎의 眞臟傷이 되어 일어난다”고 하였다.

韓南洙는 咯血에 속하는 질환으로

⑴ 肺出血, ⑵ 肺結核空洞出血, ⑶ 非結核性空洞出血 卽 氣管支擴張症,

⑷ 肺膿瘍, ⑸ 肺潰疽, ⑹ 肺梅毒, ⑺ 肺디스토마, ⑻ 肺稧狀出血, ⑼ 肺炎,

⑽ 僞模性氣管支炎, ⑾ 인푸루엔자성 氣管支, ⑿ 腐敗性氣管支炎, ⒀ 肺結石,

⒁ 大動脈瘤, ⒂ 縱隔窩膿瘍, ⒃ 食道癌, ⒄ 外傷性肺出血, ⒅ 肺實質性出血 등을 꼽았다.

그는 이러한 처방법은 「醫學入門」의 枇杷葉散을 사용한 용법을 활용한 것으로

“暑毒攻心嘔血에 枇杷葉散去丁香加黃連”한다는 조문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

먼저 滋陰降火湯(白芍藥, 當歸, 熟地黃, 麥門冬, 白朮, 生地黃, 陳皮, 知母, 黃柏, 甘草)으로

陰虛火動의 기세를 눌러주고 枇杷葉散(枇杷葉, 陳皮, 厚朴, 丁香, 香茹, 麥門冬, 木瓜, 茅根, 灸甘草)으로

咳血을 막으며 淸暑益氣湯(蒼朮, 黃芪, 升麻, 人蔘, 白朮, 陳皮, 神曲, 澤瀉, 黃柏, 當歸, 靑皮,

麥門冬, 葛根, 甘草, 五味子)으로 外熱內寒을 치료하여 마무리한 것이다.

이에 대해 韓南洙 先生은

“그러므로 浮沈升降은 順天時오,

南北東西水土條가 如合符合하니 凡病에 有初起原因이라”고 논평하고 있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 교실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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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훈(宋壎)의 醫案(1)

내용: 1973년 대전시 42세 감기의 증상을 띤 환자.

건강한 체구에 안색이 청흑하고 양쪽 빰이 홍조가 있고

汗出如珠하고, 咳嗽와 喘滿이 있음.

8월 2일. 부인과 청년의 부축을 받고 들어옴.

한눈에 柴胡桂枝乾薑湯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달동안 제대로 눕지 못했고 脈象은 弦滑大하였고,

右脇肋部位에 手掌大의 結硬과 壓痛이 있고,

咳嗽, 咯血, 口燥, 尿黃, 寒熱과 脇痛으로 臥席不能하며

下腹部에 多少動悸가 있고, 舌白苔, 聽診上으로는 呼吸促急과 雜魚(痰聲)가 많다.

각종 병원, 의원, 한의원할 것 없이 다 다녀도 효험이 없었다.

근래 수 주간 보건소에서 엑스레이 촬영 결과 결핵성늑막염으로 진단하고

항결핵제약으로 무료진료를 받고 있으나 전혀 효과가 없다고 한다.

제1목표로 上氣를 삼고 柴胡桂枝乾薑湯과

제2목표를 胸脇部逐水를 삼아 加味芎夏湯을 4첩씩 투여하여 교대로 복용시킴.

8월 6일. 환자가 그 약을 먹고 병이 낫는 것 같다면서 다시 진찰을 요구.

頭汗이나 喘滿 등 증상이 나아진 듯 하나 매일 두세차례 寒戰이 난다고 하여

柴胡桂枝乾薑湯과 肝經治熱을 목표로 加味淸肝湯을 4첩씩 투여함.

8월 10일. 寒熱도 없어지고 汗出도 현저하게 줄고

咳嗽도 반감되었으며 식욕도 생겼으니 咯血이 여전하다고 하여

正症治療를 목표로 柴胡桂枝乾薑湯과 加味芎夏湯을 4첩씩 투여하였다.

8월 14일. 모든 증상이 현저하게 감소하고

환자 자신이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다시 前方을 4첩씩 투여하여 20일만에

처음으로 누워서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하여 1개월만에 咯血과 咳嗽가 없어지고

환자가 산책도 하고 곧 회복되어 2개월 후에는

다시 직장에 돌아가 건강한 몸으로 일을 하고 있다.

(1974년 「醫林」제101호)

부가설명

宋壎 선생은 대전시에서 1964∼1965년간 한의사회장,

1966년에는 충청남도 지부로 개편되었을 때 지부장으로 선출되었다.

1969년에는 회관건립을 위한 기금운동을 시작하여 1971년에 회관 준공식을 하였다.

이 醫案은 1973년 「醫林」제101호에 나온다.

이 醫案은 1973년 8월 한달 동안 치료했던 42세의 남자환자의 기록이다.

柴胡桂枝乾薑湯은 「傷寒論」115조의

“傷寒 五六日 已發汗 而復下之 胸脇滿 微結 小便不利 渴而不嘔 但頭汗出

往來寒熱 心煩者 此爲未解也 柴胡桂枝乾薑湯 主之”라는 문장에서 나오는데,

처방은 柴胡, 桂枝, 黃芩, 乾薑, 牡蠣, 甘草, 天花粉으로 구성되어 있다.

加味芎夏湯은 逐水利飮시키는

芎夏湯(川芎, 半夏製, 赤茯苓 各一錢, 陳皮, 靑皮, 枳殼 各五分,

白朮, 甘草炙 各二分半. 右剉作一貼薑五片水煎服)의 變方이며,

加味淸肝湯은 肝經血虛有怒火를 치료하는

淸肝湯(白芍藥 一錢半, 川芎, 當歸 各一錢, 柴胡 八分,

山梔仁, 牧丹皮 各四分. 右剉水煎服)의 變方일 것이다.

송훈 선생은 한달간의 치료 과정에서 정확한 대증치료를 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환자는 상기, 해수, 천식 등으로 누워서 잠을 잘 수 없는 상태였는데,

원인을 잡아서 치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기에는 外感表證이 남아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柴胡桂枝乾薑湯과 痰飮을 제거하기 위해 加味芎夏湯을 병용하였고,

加味淸肝湯를 같이 쓰기도 하여 환자의 肝熱을 같이 다스리고 있다.

이 醫案을 통해 송훈 선생이 「傷寒論」과 후세 처방 모두에 능통했음을 알 수 있다.

김남일(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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