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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매일 같이 전 세계에서

새로운 브랜드의 차가 개발되고 시판되는 만큼

차의 명확한 가짓수를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좁은 의미에서 차나무의 잎으로 만든 것만을

차라고 명명해도 그 종류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같은 차나무에서 생산되는 똑같은 찻잎으로도

얼마든지 맛과 향이 전혀 다른 차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차의 분류법 또한 제조 과정,

찻잎을 따는 시기, 발효 정도, 품종, 탕색 등의

여러 방법을 통해 구분하는데,

이 가운데 발효 정도에 따른 분류법이

가장 과학적인 분류법으로 꼽힌다.

발효 정도에 따른 분류

찻잎을 어느 정도 발효시켰는지에 따라

불발효차(不醱酵茶), 반발효차(半醱酵茶),

발효차(醱酵茶), 후발효차(後醱酵茶)로 나눈다.

찻잎을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한 환경에 두면

찻잎에 존재하는 산화효소에 의해 폴리페놀이 산화되어

찻잎은 본래의 색이 아닌 황색과 홍색을 띠게 된다.

이것이 바로 차의 발효 과정이다.

이때 찻잎은 색이 변할 뿐만 아니라

독특한 향과 맛을 지니게 된다.

불발효차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은 대표적인 불발효차는 녹차로,

찻잎을 따서 바로 찌거나 솥에 덖어서

산화효소의 활성화를 막아

찻잎 고유의 빛깔을 그대로 유지시켜 만든다.

반발효차

반발효차는 찻잎을 딴 후 야외나 실내에서 찻잎을 시들리고

이를 서로 섞어주는 과정을 통해 일부를 산화시키는데,

대표적인 차가 중국 남부와 대만에서 많이 생산되는 오룡차(청차)다.

이러한 반발효차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맛과 향이 변함없다는 특징을 지닌다.

발효차

홍차로 대표되는 발효차는

찻잎의 80퍼센트 이상을 발효시킨 차로

인도, 스리랑카, 중국 등의 아열대 지방에서 주로 생산된다.

고품질의 홍차일수록 제다한 찻잎이

약간의 광택을 지닌 암갈색을 띠고,

탄닌 성분을 많이 함유한다.

후발효차

후발효차는 녹차를 제다할 때처럼

일단 열로써 찻잎의 효소를 파괴한 후,

공기중에 떠다니는 미생물의 번식을 유도해

찻잎의 발효를 일으켜 만든다.

대표적인 차가 보이차로

이러한 발효 과정 때문에 '살아 숨 쉬는 차'라는 애칭을 얻었다.

탕색에 따른 분류

차의 발효 정도에 따라 차를 우려낸 뒤의 탕색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를 통해 차의 종류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기도 한다.

녹차

찻잎을 딴 후 발효되지 않도록

바로 증기로 찌거나 솥에 덖어 만든 불발효차다.

탕색은 맑고 고운 연둣빛을 띤다.

한국, 중국, 일본이 주요 생산국으로

중국은 덖음차를, 일본은 증제차를 주로 생산한다.

우리나라는 주로 전통적인 덖음 방식으로 녹차를 만들며,

증제차는 전체 물량의 25~30% 정도다.

백차

백차는 솜털에 쌓인 어린 싹만을 골라

덖거나 비비기를 하지 않고 그대로 건조해 만드는데,

제다한 찻잎에서는 은빛 광택이 나며 탕색은 담황색이다.

맑은 향과 입 안을 깔끔하게 해주는

산뜻한 맛 때문에 각광받고 있으며,

또 열을 내려주는 효과가 뛰어나 한약재로도 많이 쓰인다.

중국의 복건성과 광동성, 대만 등지에서 많이 생산된다.

청차

발효 정도가 20~70% 사이의 반발효차가 이에 해당되며,

제다한 찻잎의 가운데는 푸른빛이 나고

가장자리는 붉은빛이 돌며 탕색은 선명한 등황색이다.

대표적인 청차로 꼽히는 오룡차(烏龍茶)는

찻잎 모양이 까마귀처럼 검고 용처럼 구부러져 있어 붙은 이름이다.

황차

황차는 반발효를 위해 찻잎을 쌓아두는 퇴적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찻잎의 성분 변화가 일어나 특유의 차맛을 지니게 된다.

발효 과정 중에 엽록소가 파괴된 황차는 찻잎, 우려낸 찻물,

우려낸 찻잎의 빛깔 모두가 황색을 띤다.

발효 전보다 쓰고 떫은맛이 60% 이상 감소되어

부드럽고 순하다.

홍차

찻잎이 80% 이상 발효된 홍차는

떫은맛이 강하고 탕색이 붉은빛을 띤다.

반면 서양에서는 찻잎의 색이 검다고 하여

블랙티(black tea)라고 부른다.

세계 차 생산량의 75%에 해당할 만큼 홍차의 인기는 대단하며,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 특히 많이 소비하고 있다.

흑차

차를 압축하여 덩어리로 만든 흑차는

중국의 운남성을 중심으로 생산되며, 보이차가 대표적이다.

찻잎의 빛깔은 흙갈색이며,

우려낸 찻물은 갈황색이나 갈홍색을 띤다.

저장 기간이 오래될수록 고급차로 취급되며,

숙성된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출처: 찻잎 속의 차, 2008. 8. 14.,

이진수, 이진미, 주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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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차 한 잔 하실래요?'라는

말을 건네곤 한다.

그런데 이때의 '차(茶)'는

차나무의 찻잎을 우린 음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커피를 지칭하는 경우일 때가 더 많다.

예컨대, 차를 대접하겠다고 한 자리에서

커피를 내온다고 한들 그 누구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차'라는 단어는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를 뜻한다.

실제로 차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차나무의 어린잎을 우리거나 달인 물' 이라는 뜻뿐만 아니라

'식물의 잎이나 뿌리, 열매 따위를 우리거나 달인 음료'를 일컫는

광범위한 범주의 뜻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음료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차' 하면 으레 커피를 떠올리는 건

그만큼 커피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음료로 자리잡았다는 뜻일 것이다.

커피는 독특한 향과 맛뿐만 아니라

굳이 커피숍에 가지 않아도 거리의 무수한 자판기에서

동전 몇 개만으로도 접할 수 있어 대중에게

그 어떤 음료보다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었다.

한번에 마실 수 있는 분량으로 믹스된 인스턴트커피와

캔음료 또한 커피 시장을 키우는 원동력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불거진 웰빙 열풍으로 인해

건강 음료의 대명사로 꼽히는 차 또한

앞서 언급한 커피 시장과 점점 그 모습을 같이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카페에서

녹차를 이용한 음료들이 점점 인기를 얻고 있으며,

아예 커피를 제외하고 녹차만을 테마로 삼은

퓨전카페들도 성업 중이다.

캔음료 시장에서도 새로운 녹차 음료가

연이어 출시될 만큼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이렇듯 차 또한 커피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공간에서만이 아닌 일상의 공간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음료가 되었다.

반면 커피와 차는

제조 방식에 있어서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차는 차나무의 잎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반면

커피는 커피나무의 열매를 볶은 후 갈아서

음료를 추출한다는 점이 다르다.

또 세계 3대 기호음료인 커피, 코코아, 차를 살펴보면

열매를 가공해 만드는 커피, 코코아와 달리

차는 잎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두 음료와 분명하게 구분된다.

 

출처: 찻잎 속의 차,

2008. 8. 14., 이진수, 이진미, 주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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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신다

- 飮茶·煎茶·喫茶·點茶·철茶…

차문화 역사의 유구함 때문인가?

‘차를 마신다’는 여러 가지로 표현이 된다.

‘차를 끓여 마신다’는 뜻의

전다(煎茶)·자다(煮茶)·포다(泡茶)·팽다(烹茶)가 있고,

‘차를 마신다’는 뜻의

음다(飮茶)·끽다(喫茶)·철다(철茶)가 있다.

이외에 가루차를 마실 때는 점다(點茶)라고 표현한다.

모두 차를 끓이고 마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특정한 차와 상황에서만 써야하는 말도 있다.

중국의 차문화를 시대별로 나눌 때

흔히 당·송·명나라 시대로 대별한다.

당나라는 음다문화가 정착되고

육우의 ‘다경(茶經)’이 씌어진 시대이다.

이때는 주로

덩이차인 병차(餠茶)와 단차(團茶)가 많았고

차를 먼저 불에 굽고 가루낸 후 끓여서 마시는

자다법(煮茶法)이 성행하였다.

송나라 때에는 점다법(點茶法)의 시대였다.

덩이차를 불에 굽고 곱게 갈아서

가루차를 만드는 것 까지는 당나라와 같지만

물과 함께 끓이지 않고 뜨거운 물에 넣고

휘저어 먹는 점다법이 유행하였다.

말차(散茶)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마셨는데

지금의 가루차(末茶) 먹는 법과 비슷하다.

명나라는 조정에서 덩이차인 단차의 생산을

금지시키는 등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잎차의 시대가 되었다.

잎차를 끓인 물에 우려서 마시는 방법이 생겨났다.

이처럼 현대에 차를 마시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인

포다법(泡茶法)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오랜 기간 같은 차문화를 공유하였다.

당나라와 동시대인 신라에서도

덩이차를 자다법으로 먹었는데

신라의 유적인 화개 쌍계사의 국보 47호

진감선사비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시대별 차문화를 표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표 참조>

지리산에 남은 신라의 茶香

다시 중국차(漢茗)를 공양하는 이가 있으면

돌솥에 섶나무를 지펴, 가루내지 않은 채로 끓여 마시며 말하기를,

‘나는 이것이 무슨 맛인지 알지 못한다. 단지 배를 적실뿐이다’하였으니

참됨을 지키고 속됨을 싫어함이 다 이러하였다. - 진감선사비

혜소 진감국사(慧昭 眞鑑國師, 774~ 850년)의 비문에 있는 내용이다.

선사는 당나라에 27년간 유학한 선승으로

불교 조계종의 종조(宗祖)인 도의선사와 함께 수행하기도 하였다.

830년 귀국하여 지리산 화개동으로 와서

옥천사(쌍계사의 전신)를 창건하였으며,

중국의 선과 차문화 그리고 범패를 전한

우리나라 범패 종장(宗匠)이기도 하다.

비문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짓고 썼으며,

문장과 글씨가 너무나 훌륭해서

중국에 까지 알려져 서예독복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비문의 중국차(漢茗)라 한 것은 토산차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누군가가 선사의 실생활이 검소함이 안타까워

향과 차라도 최고급 호향(胡香)과 중국차를 쓰라고 공양하였으나

선사는 속된 세속의 가치에 초연해 근본을 지키면서

실체를 얻는 생활을 한 것이다.

향 피우면 마음이 경건하여지고

차 마시니 배를 곱고도 윤택하게 적실뿐이라!

신라 당시의 음다법은 덩이차를 가루내어

자다법으로 다리는 방법이었으나,

선사는 덩이채 돌솥에 넣고 섶나무를 태워 끓여 마셨다.

세속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으나 참됨 - 진솔함을 지키고

속됨을 싫어함(守眞오俗)의 수행자다운 다풍(茶風)을 보인 것이다.

팽주(烹主)와 다각(茶角)

충성을 다해 토끼를 쫓던 사냥개도

토끼를 잡고나자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고사가 있다.

그래서 ‘烹’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인가 어감이 좋지 못한 단어가 되었다.

언젠가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서

팽주(烹主)라는 말을 더 이상 사용 말자는 주장들이 있었다.

팽주는 차를 다려내는 사람, 즉 찻자리의 주인을 말한다.

차의 색향기미(色香氣味)를 온전히 담아낼 물을

정성스럽게 끓여 차를 다려내는 사람이다.

이들이 팽주대신 사용하자고 했던 용어가 다각(茶角)이었다.

다각은 원래 총각(總角)에서 유래한 말로,

중국의 청소년들이 머리를 정수리 양쪽에

뿔같이 묶고 다니면서 생긴 단어이다.

다담(茶啖)·다례(茶禮)·다게(茶偈)·

선다(禪茶)·다비(茶毘) 등의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차는 불가(佛家)와 인연이 깊은 물건이다.

스님들의 직책을 적은 용상방(龍象榜)과

초파일이나 큰 다례 때 공양물과 음식을 준비할 임무를 정한

육색방(六色榜)에 ‘다각’이란 직책은 빠지지 않는다.

다각은 사찰에서 차와 군음식(간식)

즉 다반(茶飯)을 책임질 젊은 스님을 말한다.

권모술수가 횡행하고 팽 당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밝고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으니,

맑고 향기로운 차를 끓이는 사람을

팽주라 호칭하기보다는 다각이 더 어울린다는 주장이다.

다각이 아니더라도 큰스님을 모시는 시자(侍子)는

언제든지 차를 낼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매일 반복적으로 행하는 쉬운 일을

다반사(茶飯事)라 하지 않는가?

선가(禪家)에서는 차마시듯하는

다반사의 평상심(平常心)이 도라고 가르치고 있다.

김동곤 (쌍계제다 대표)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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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 나누기

차를 까다로운 격식과 절차에 따라 올리고 나눠야 할 때도 있지만

평소에는 쉽고 편안한대로 마실 일이다.

명산대천과 신불(神佛)이나 조상께

다례(茶禮)를 지내거나 행사 때의 헌다(獻茶) 등에서는

격식을 따져야한다.

하지만 통상의 생활차를 마실 때는

물을 다루는 데 있어서의 신중함과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배려만 있으면

차나누기-곧 행다(行茶)에 충분하다.

차를 즐기려면 우선 물을 끓여야 한다.

소독 냄새나는 수돗물이 아닌 음용수면 좋다.

수돗물 밖에 없다면 한나절 받아 놓았다가

소독 냄새가 가신 후에 사용한다.

물이 끓고 차가 준비되었다면 차그릇[다기(茶器)]이 있어야 한다.

차를 우려낼 주전자[흔히 다관(茶罐)이라 한다]와 찻잔이 기본이 된다.

끓인 물을 한김 나가게 식히고,

우린 차를 부어서 각자의 잔에 나누기 편하도록

홈대가 있는 귓사발[흔히 숙우(熟盂) 또는 식힘사발이라 한다]을

사용하기도 한다.

격식있는 찻자리라면

차통·차숟가락(차시, 차칙)·잔받침·찻상·차수건·

차행주·다식·탕관·풍로·구기 등의 많은 차도구가 있어야하지만

후에 차가 편해진 후에 사용해도 늦지 않다.

이제 차를 우려서 나눌 차례이다.

우리 속담에 “수제비 잘하는 아주머니, 국수도 잘한다”는 말이 있다.

인스턴트이지만 커피를 맛있게 타는 사람은 차도 맛있게 다린다.

현대의 차는 거의 우려서 마시지만 옛날에는 끓여서 마셨고

그 말이 남아 차를 다린다고 한다.

맛있는 차를 끓이려면 우선 끓인 물로 차그릇들을 한번 가셔준다.

잔을 예온(豫溫)하는 것도 커피와 마찬가지인데,

이는 갑자기 더운 차가 잔에 따라지면

잔의 테두리와 안쪽 온도 차이로

차가 아랫윗물이 져서 균일한 차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잔을 정갈하게 소독하는 뜻도 있다.

숙우에 사람 수만큼 필요한 탕수를 붓고

다관에 1인당 2~3g씩 차를 넣는다.

한 김이 나간 숙우의 물을 다관에 붓고

차가 우러나기를 1분여 동안 기다려 잔에 따른다.

잔에 따를 때에는 차례대로 찻잔에 조금씩 따르고,

다시 역순으로 차를 부어 각 잔의 차 농도를 균일하게 한다.

지금은 숙우에 우린 차를 다 부어서 각 잔마다 한 번에 따르기도 한다.

차를 마실 때는 팽주(주인)가 차를 권하고

함께 2~3회에 나누어 마시며 가벼운 담화를 나눈다.

다시 2번째, 3번째 탕도 같은 방법으로 차를 다리고 나누면 된다.

차는 한번 다리면 보통 3잔까지 마시는데 이를 삼탕(三湯)이라 한다.

예부터 우스개가 있다.

첫 탕은 어린 숫처녀와 같다고 했다.

그 맛이 순수하고도 산뜻하기 때문이다.

둘째 탕은 신부와 같다고 한다.

그 맛이 달고도 감칠맛이 나며 아름다운 까닭이다.

셋째 탕은 조강지처와 같다고 하였는데

그 맛은 “담백하고 모를 맛이 있다(淡而無味)”고 한다.

그러나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조강지처와의 해로(偕老)를 원해서인지

6~7탕까지 동거하려고 애들을 쓴다.

건강에 좋은 차, 남편들이 매일 마시도록 하자!

차의 성분

녹차에는 약 2백여 종의 향기성분이 있고,

그 함량은 0.005% 정도의 정유성분이다.

차의 성분들 중에서 차맛을 좌우하는 것은

200종의 향기와 쓴맛을 내는 카페인,

떫은맛을 내는 탄닌의 카테킨과

달고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류 등이다.

단백질에 1~5% 함유된 유리아미노산은

차의 맛과 향기 생성에 깊은 관계가 있는 성분으로

일조량이 많아지고 기온이 상승하는 늦차에는

함유량이 현저히 감소한다.

늦차의 품질과 가격이 봄차인 첫물차(우전차·작설차)보다

크게 떨어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쓴 카페인과 떫은 카테킨은

높은 온도의 물에서 잘 우러나오므로

감칠맛 나는 아미노산 성분이

많이 나오게 하려면 낮은 온도에 차를 다려야 한다.

고급 녹차일수록 차탕물을 60~70°C로 식혀서 써야

떫지 않은 향기로운 차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차에 다량 함유된

비타민 C의 파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녹차에는 레몬이다 귤보다 5배나 많은 비타민 C를 가지고 있다.

발효차는 반대로 뜨겁게 우려야

좋은 향기와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카테킨류가 발효로 인하여

산화하였기 때문이다.

녹차의 주요 성분인

카테킨의 절반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EGCG는

요사이 차의 건강보건 성분으로 각광받고 있다.

EGCG는 많은 식품 등에 항산화제로 사용되는

비타민 E의 20배, 비타민 C의 10배에 해당하는

강력한 항산화력을 나타낸다.

차의 카테킨은 노화나 동맥경화, 암 등의

각종 성인병 예방과 장수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차 생산지의 주민들이 차를 거의 마시지 않는 지역주민들보다

암과 성인병의 발생이 적고 장수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김 동 곤 (쌍계제다 대표)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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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아언각비(雅言覺非)

다산 정약용(1762~1836년) 선생의 저서인

‘아언각비(雅言覺非)’는 아름다운 말을 살리고

잘못 사용하고 있는 말을 고쳐서 사용한다는 뜻의

제목을 가진 책이다.

“차(茶)란 겨울에 푸른 나무이다.

육우의 ‘다경(茶經)’에는 첫째 차(茶), 둘째 가(가),

셋째 설(설), 넷째 명(茗), 다섯째 천(천)이라 하였는데,

본래 이것은 초목의 이름이지 마시는 음료의 이름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를

탕(湯)이나 환·고(丸·膏)처럼 마시는 것으로 인식하여

무릇 약물을 단조롭게 다리는 것을 모두 차라고 하여

생강차, 귤피차, 모과차, 상지차(桑枝茶), 송절차(松節茶),

오과차(五果茶)라고 관습적으로 항상 사용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마시는 차는 산차속(山茶屬) 차나무의

새 순과 어린잎으로 만든 것만을 차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마실 거리라는 뜻으로 이르는

인삼차, 보리차, 생강차 등은

차를 대신해서 마시는 대용차이지 차는 아니다.

스님들의 은어로 ‘반야차(般若茶)’라는 말이 있다.

불가에서 금기로 여기는 술을 이르는 말이다.

또 곡식을 발효시켜 만든 술은 ‘곡차(穀茶)’라 말한다.

다산선생의 말대로라면 모두 아름다운 말(雅言)은 아니다.

커피도 대용차의 한 종류일 뿐이니,

정약용 선생이 현대에 살았다면

커피숍을 찻집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서 지적하지 않았을까.

차의 종류를 나누는 기준

1. 발효과정

먼저 차를 만들면서

발효과정을 거쳤는가에 따라서 차의 종류가 달라진다.

발효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차를 녹차라 한다.

완성된 찻잎이 녹색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다(製茶)시 찻잎이 발효될 여건을 만들지 않기 위해

신선한 찻잎을 고압증기나 가열된 솥에서 익혀내어

산화효소의 활성을 멈추게 한다.

2. 익혀내는 방법

찻잎을 익혀내는 방법에 따라

덖음차(炒茶)와 증차(蒸茶)로 다시 나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녹차는 대부분이 덖음차이고

증차는 주로 일본에서 발달하였다.

3. 발효정도

발효차는 발효정도에 따라

약발효차(포종차 등), 중간발효차(오룡차 등),

강발효차인 홍차, 그리고 계속 발효가 진행되는

후발효차인 흑차(보이차 등)가 있다.

최근까지 국내에서는 대부분 녹차만 만들어왔지만

전통적인 발효차를 연구해 우리의 발효차들이

하나둘씩 만들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발효 외에도 찻잎의 모양, 다른 재료의 혼합,

완성된 차의 형태, 찻잎을 따는 시기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꽃이나 향료 등을 섞은 향편차(香片茶)로는

자스민 꽃을 섞은 자스민차가 대표적이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현미 녹차도 혼합차에 속한다.

4. 제품의 모양

제품의 모양에 따라서

덩이차, 잎차, 가루차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차를 증기로 쪄서 둥근 떡과 같은 모양이나

벽돌, 동전 등과 같은 모양으로 찍어내는

덩이차[긴압차(緊壓茶)]와

잎모양 대로 만든 잎차[산차(散茶)],

일본에서 발달한 녹차를 미세하게 갈아 만든

가루차[말차(末茶)]가 그것이다.

5. 시기

찻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서는

봄차, 여름차, 가을차로 나누기도하고,

곡우(穀雨, 24절기의 하나로 통상 4월 20일) 전에

그해 첫 찻잎으로 만든 우전차(雨前茶),

입하(立夏, 통상 5월 5~6일 경) 전에 만든

입하차(立夏茶) 등이 있다.

6. 모양(크기)

찻잎의 모양(크기)에 따라

세작(細雀), 중작(中雀), 대작(大雀)으로 나누기도 한다.

찻잎의 모양이 참새의 혀 같은 어린잎으로 만들었다하여

작설(雀舌)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통상 고급 잎차의 대명사가 되었다.

또한 차의 어린 순이 뾰족한 창(槍)과 같고

잎은 창에 단 깃발(旗)과 같다하여

순 하나에 잎 하나가 핀 것을 1창1기라하고

1창2기, 1창3기로 분류하기도 한다.

차의 6대 분류

원래 중국의 분류법이나

지금은 모든 나라에서 사용하는

차 제품의 색깔에 따른 분류법이다.

1. 녹차(綠茶)

녹색을 유지하기 위해 전혀 발효시키지 않은 차로

익히기, 비비기, 건조의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

2. 백차(白茶)

차의 순이 하얀 털로 덥혀있는 품종으로 만들며,

흰 털을 보호하기 위해 익히지 않고 비비지도 않는다.

3. 청차(靑茶)

중국 광동과 대만에서 발달한 약발효차로

맛보다 향기를 중요시한다. 철관음, 오룡차가 있다.

4. 황차(黃茶)

녹차를 가공하는 중에 방치하여

찻잎이 누렇게 발효되는 과정을 거친다.

비효소성 발효차로 가장 오래된 차 종류의 하나이다.

몽정황아, 군산은침 등이 유명하다.

5. 홍차(紅茶)

85% 이상 강하게 발효시킨 차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고 있고,

중국의 기문홍차, 스리랑카의 우비홍차,

인도의 다이질링홍차를 세계 3대 명차라고 한다.

6. 흑차(黑茶)

중국 운남성이 산지이며 교목의 대엽종으로 만든다.

찌고 비벼서 두텁게 퇴적시켜서 발효를 시킨다.

주로 덩이차로 생산하고 후발효차이다.

김 동 곤 (쌍계제다 대표)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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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속의 병아리가 탄생의 시간이 다가오자

알 속에서 미세하게 껍질을 쫀다.

어미닭도 밖에서 정확하게 같은 곳을 쪼아,

병아리에게는 지금까지의 전부였던 알을 깨부수고

새 세상으로 인도한다.

안에서 쪼는 것을 줄(줄)이라 하고

밖에서 쪼아 주는 것을 탁(啄)이라하니,

줄탁(줄啄)은 둘이 함께 행하여야 이룰 수 있음을 뜻하는

오묘한 생명탄생을 이르는 말이었다.

선가(禪家)에서 제자의 공부를 점검하고

의문을 꼭 맞는 방법으로 가르쳐

도(道)에 인도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옛날 선종의 조사(祖師)들은

제자들이 화두(話頭) 타파의 극점까지 와 있을 때,

깨달음 가까이에서 답답해할 때,

상식적으로 상상 할 수도 없는 고함이나 매질, 동

문서답 등으로 활연대오(豁然大悟)의 기폭제를 제공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조주선사의 차(茶),

마조도일의 고함과 욕설(喝),

덕산의 몽둥이(棒) 등이 있었다.

제자와 스승이 이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줄탁함으로

서로 상응(相應)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차로서 제자들을 도로 인도한 선사로

중국의 조주종심(趙州從심 778~897년)과

조선의 벽송지엄(碧松智嚴 1464~1534년)이 유명하다.

끽따거(喫茶去)와 점다래(點茶來)

120세까지 살았다고 하여 고불(古佛),

또는 하북의 조주(趙州)지방에서 선을 휘날렸다하여

조주라 불리웠던 조주선사는 도를 묻는 누구에게나

“차나 마시게(喫茶去)”하였다.

조주의 관음원(觀音院)에서 손님을 맞이하면서, 한 중에게 물었다.

‘전에 여기 와 본적이 있는가?’

‘네 있습니다.’

‘그럼 차나 한 잔 마시게.’

또 한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 와 본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차나 한 잔 마시게.’

곁에 있던 원주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와 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차를 마시라고 하신 것은 그만 두고라도

무엇 때문에 와 봤다는 사람에게도 차를 마시라고 하십니까?’

스님이 ‘원주야!’ 하고 부르자

원주가 ‘예’ 하고 대답하자

‘자네도 차나 한 잔 하게.’

그 유명한 끽따거 화두로 茶가 道이고,

차가 도에 이르게 하는 길이자 차를 마시듯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임을 강조한 것이다.

벽송당은 전북 부안 출신으로 무

예를 좋아하며 무과(武科)에 뽑혔고,

여진족이 침입했을 때 허종(許琮) 장군 휘하에서 공을 세웠다.

28세에 출가하고 직지사 벽계정심(碧溪淨心)의 법을 이었다.

이후 지리산 화개동의 의신사(義神寺)에서

선을 선양하고 교(敎)를 담론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니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선사는 설법을 하면서 주의를 환기시키거나 결론을 강조할 때,

깨침에 줄탁이 필요할 때 곧잘 차를 이용하였다.

한번은 많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할 때였다.

이제 게송을 지어 읊고, 설법을 마치려 할 때였다.

선사는 불자(拂子)를 들어 한 번 휘두른 다음 시자(侍子)를 불렀다.

“차를 따르라(點茶來)” 한참을 묵묵히 앉았다가 게송을 읊는다.

푸른 대는 바람 때문에 더욱 곧고 (翠竹和風直)

붉은 꽃은 이슬 머금어 더욱 향기롭도다 (紅花帶露香)

1534년 겨울, 화개동의 수국암(壽國庵)에서

제자들에게 법화경을 강설하고 있었다.

문득 크게 탄식하기를 “대개 모든 법에서 적멸상(寂滅相)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니 이제 너희들도 만일

부처님의 말없음을 믿으면 곧 자가심지(自家心地)를 깨칠 것이다.

오늘은 노승도 또한 너희들을 위해 적멸상을 보이고 가리라.

너희들은 밖을 향해 구하려 말고 마음 깨치기를 힘써라.”

말을 마치자 시자를 불러 “점다래” 하고 단정히 앉아 문을 닫았다.

한참동안 잠잠하여 제자들이 문을 열고 보았을 때는 이미 입적(入寂)한 뒤였다.

선사의 나이 71세 였고, 스님이 된지 44년 이었다.

쌍계사에 부도가 남아있다.

벽송당은 차의 고향 화개동에서 차를 따르게 하고

지리산 스님들에게 차로써 적멸상을 가르친 것이다.

서산대사와 다선일미(茶禪一味)

서산대사(1520~1604년)는

15세 소년으로 지리산에 유람왔다가

화개 의신동(義神洞)에서 스님이 되어

전후 20년을 화개에서 살았다.

화개의 신라고찰 내은적암(內隱寂庵)을 중창하고

너무나도 좋아서 “청허원(淸虛院)”이라 하고

스스로 청허라고 자호(自號)하였다.

청허원에서 대표적인 저술인

‘선가귀감(禪家龜鑑)’을 집필하고

화개동을 노래한 많은 시와 글들을 남겼다.

중 대여섯

내 암자 앞에 절을 지었네

새벽 종에 같이 일어나고

밤 북에 같이 잔다네

시냇물에 달을 함께 길어

차 다리니 푸른 열기 나뉜다.

날마다 무슨 일 의논하는가

염불과 참선이라네

‘두류산 내온적암’이다.

대사는 “마음의 고향”이자 우리나라 “차의 고향”인 화개에서

스님들이 매일하는 일은 차 끓이고

염불하며 참선하는 것이라 노래하고 있다.

즉 “다선일미” 사상을 제창하고 있는 것이다.

서산대사는 선은 부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의 말씀이라고

선교의 진수를 한마디로 경쾌하게 정의하였고

이능화는 “조선의 선교사”에서 “서산은 조선불교의 중흥조이다.

조선불교는 순도와 아도에서 시작하여 함허와 서산이 완성하였다.”고 찬양하였다.

서산대사는 화개동에서 수행자를 위한 ‘선가귀감’을 지었고,

수행자의 다풍(茶風) - 다선일미를 생활화 하였다.

김 동 곤 (쌍계제다 대표)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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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감 혜소(眞鑑 慧昭)

진감(774~850년) 선사는 27년간 당나라에 유학하였다.

6조 혜능의 현손(玄孫 - 5대 법손)으로 선을 배우고 행하였다.

불교 음악인 범패(梵唄)를 배워 우리나라에 최초로 전하기도 하였다.

830년에 귀국하고 대렴이 흥덕왕명으로 차씨를 심은 지리산 화개동으로 왔다.

옥천사(쌍계사의 전신)를 창건하고 범패를 가르쳤다.

850년, 선사가 쌍계사에서 입적하자

왕명으로 고운 최치원이 선사의 비문을 짓고 썼다.

비명은 ‘진감선사 대공령(大空靈)’으로 국보 제 47호 이다.

고운선생의 비문에서 선사의 차 생활을 이렇게 적고 있다.

다시 중국차를 공양하는 이 있으면

돌 솥에 섶나무를 때어

가루내지 않고 다려서는

차 맛을 모른다고 하며,

단지 배를 적실뿐이라 하네.

참됨을 지키고 속됨을 싫어함이 모두 이러하였네.

짧은 비문이지만 신라하대의

차 생활 일면을 알 수 있게 하는 당대의 금석문이다.

신라에서는 덩이차(團茶)를 가루 내어 끓여 마시는

당나라 육우가 지은 ‘다경(茶經)’과 같은 음다법이 행해졌다.

또 차를 끓이는 다구로 돌솥이 사용되었다.

굳이 중국차(漢茗)라 한 것은

신라에도 토산차가 있었다는 반증이 아닌가 한다.

선사의 모든 생활은 속됨을 싫어하고 진솔함을 지켰다(守眞惡俗)고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잠언이 아닌가 한다.

월명(月明)과 충담(忠談)

신라 35대 경덕왕(742~765년)시대,

정치는 사치와 주색으로 혼미하였지만

불국사와 석굴암이 건설되고 성덕대왕 신종이라는

에밀레종이 제작되는 문화의 황금시대였다.

경덕왕 19년(760년) 4월 1일,

해 두개가 나란히 나타나 10일 동안 없어지지 않는 괴변이 일어났다.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인연있는 스님을 모셔다가 꽃을 뿌리고

부처님을 공양하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월명스님을 모셔와 도솔가(兜率歌)를 짓게하고

산화공덕재(散花功德齋)를 지냈더니 해의 변괴가 사라졌다.

왕이 가상히 여겨 좋은 차(品茶) 한 봉과 수정염주 108개를 하사하였다.

지금까지 두 개의 태양은

왕과 정치적인 반대파를 상징하는 은유적인 표현이고,

왕은 미륵불에 의지한 신앙으로

이 난국을 타파하였다고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민심이 극도로 흉흉해지자

왕과 집권세력은 집권층과 백성들의 단합을 위해

혜성을 이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충담스님도 월명스님과 같은 화랑이자 향가작가였다.

스님은 삼짇날(3월 3일)과 중양절(9월 9일)에는

항상 삼화령의 미륵세존께 차를 공양한 다승이었다.

경덕왕 25년(766년) 삼짇날,

휴대용 헌다구(獻茶具)와 차를 통에 담아 맨 채로 임금께 불려 갔다.

왕이 청화자 차 한 잔을 내놨다.

특이한 차 맛에 이상한 향기를 풍기는 차였다.

왕은 화랑 기파랑을 찬미한 사뇌가(詞腦歌)가 뜻이 심히 높다고 칭찬하고,

백성을 편하게 다스리는 노래를 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충담스님은 안민가(安民歌)를 지어올렸다.

임금은 아비요,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요.

백성은 어린 아이라 한다면

백성이 그 사람을 알리라. …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는 태평할 것입니다.

충담스님이 휴대용 다구로

임금도 먹어보지 못한 향기로운 차로 미륵부처님을 공양하고,

임금에게 한 잔 차와 함께 임금답기를 바라는 안민(安民)을 노래하였다.

여자를 억압한 차문화 - 봉차(封茶)

차나무는 농업이 발달한 최근세까지도

옮겨 심으면 죽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초의 선사의 ‘동다송(東茶頌)’의 첫 번째 노래에서

“천명대로 옮겨 살지 않고 남쪽에서만 자란다네(受命不遷生南國)”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중국의 차고전 ‘다소(茶疏, 許次서 지음)’에서 인용한 것이다.

차나무는 원래 옮겨 심지 못하니 (茶不移本)

반드시 씨앗에서 태어난다. (植必子生)

옮기지 말고 자식을 두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取其不移遷子之意也)

지금 사람들 역시 그 예식을 하차례라 한다. (今人猶名其禮曰下茶)

이미 16세기에 차산지인 중국의 남쪽지방에는

혼인 등의 예식에 차가 예물로 사용되고 있었다.

혼인을 하차례(下茶禮)라 하고,

신부는 차나무 같이 한 남자에게서만 자식을 낳으라는 뜻이었다.

우리나라도 언제부터인지 혼례가 정하여지면

신랑 집에서 신부집에 보내는 채단과 예장을

봉치 혹은 봉채(封采)라고 하였다.

이 봉채는 봉차(封茶)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신부집에 보내는 여러 예물과 함께 차 씨앗을 보냈기 때문이다.

신부가 신랑집으로 신행(新行)을 하면

처음 하는 일이 신랑집 사당에 제사를 올리는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을 잊고 신랑집 사람으로,

신랑집 귀신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사당 주위에 차씨를 심었다.

결혼한 여인들은

“받아들인 운명 같이 옮겨 살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신랑의 운명에 따라 살아야만 하였다.

제례나 혼례에 차가 사용되면서 다례라 하였고,

차의 특성 때문에 여자를 옮아매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 것이다.

김 동 곤 (쌍계제다 대표)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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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차

동의보감은 조선 선조 때의 명의

허준(허준 1546~1615년)선생이 왕명으로

15년여의 각고 끝에 동양의학을 망라한 25권 25책으로 완성한 의서이다.

동양 3국에서 모두 간행되어 동양의학의 보감으로 칭송받고 있다.

제 22~24권은 ‘탕액편(湯液篇)’으로

649개 약재의 약성, 약미, 약독의 유무 및

약효와 채취시기 등 본초학적 지식을 기록하고 있다.

한문 약명(藥名)아래에

우리가 보통 부르는 속명( 鄕藥名)을

한글로 적고 있어 초기 국어(한글)의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탕액편 고차 苦茶 항목에서 차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苦茶 : 작설차

성질은 조금 차다(微寒). 혹 냉(冷)하다고도 한다.

그 맛은 달고 쓰면서 독이 없다.

기운을 내리게 하여 오래되고

체한 것을 소화시켜주고 머리와 눈을 맑게 한다.

소변을 잘 통하게 하고 당뇨병을 그치게 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적게 하고 또 불에 덴 독을 해독시켜준다.

… 차를 마시면

심포경(心包經)과 간경(肝經)으로 들어가며

마실 때는 뜨겁게 마셔야 한다.

차게 마시면 담(痰)이 쌓이게 된다.

오래 마시게 되면 기름기를 없애주어 사람을 마르게 한다[入門].

… 어떤 사람이 거위 불고기를 좋아하여 계속 먹었다.

의사가 반드시 몸속에 옹병(癰病)이 생겨 죽을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병들지 않자 찾아가보니 매일밤 시원한 차

한 사발을 반드시 마시고 있었다.

이것이 거위고기의 독을 푼 것이다[食物].”

동의보감에는 차를 처방하거나 이용한 것이

167번의 예가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차는 기호음료이기 이전에 약인 셈이다.

탕액편의 기록대로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대소변을 잘 배설하게 한다.

소화를 돕고 기름진 음식으로 인한

비만·당뇨·열병과 두통을 치료하고 독을 풀어준다.

심장과 간을 이롭게 하나

성질이 약간 차므로 뜨겁게 마시라고 충고한다.

오래 마시면 체지방을 분해하여 사람을 마르게 한다고 적고 있다.

차는 식생활이 서구화, 인스턴트화 되어가고

활동은 더욱 적게 하여 쌓여 넘치는

영양과 지방이 문제인 현대인에게

가장 알맞은 음료라 할 수 있겠다.

동의보감의 처방 중

공부하는 학생이 먹으면 기억력이 좋아지고

머리가 맑아져 학습능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총명탕(聰明湯)’이 있다.

먼저 백복신(白茯神)을 감초물에 담갔다

딱딱한 심을 제거한 원지(遠志)를 생강즙에 담갔다가 건조시킨 것,

그리고 석창포(石菖蒲)를 같은 양으로 준비한다.

잘 말려 준비한 세 가지 약재를 곱게 가루내어

2돈 씩 차로 하루에 세 번씩 점복(點服)한다.

이 총명탕을 어린 학동들이 먹으면 그 어려운 한자를

매일 일천자씩 외울 수 있다고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임금에게 차를 처방한 예가 있다.

“중종 39년 11원 12일,

임금의 번민에 칡(葛根)·승마(升麻)·황련(黃蓮)·맥문동(麥門冬)·

인삼(人蔘)·강활산(羌活散)·오미자(五味子)·차(茶)·검은콩에

대잎 달인 물(竹葉煎水)을 첨가하여 올렸다.”

“순조 원년 11월 12일,

임금의 다리와 발에 크고 작은 발진이 솟았다.

그 달 24일 약원(藥院)에서 금은화·차·사탕 각 세 돈에

안신환(安神丸) 반 알을 조제하여 올렸다.”

◆ 미국에서 새로이 조명되는 차

2000년. 커피와 홍차를 즐기는 미국에서

차와 마늘에 관한 의미 있는 발표가 두 건 있었다.

하나는 미국국립암연구소(NCI)에서

세계인이 먹고 있는 음식으로서

항암효과가 가장 좋은 40가지 식품을 발표한 것이다.

이 40가지를 12개 식품군으로 나누어

피라미드 표로 만들었는데

이 피라미드의 위쪽에 위치할수록 항암작용이 큰 것이다.

마늘의 효능이 가장 높아 정점에 있고

두 번째 칸에 양배추와 감초가,

세 번째 칸에 당근·셀러리·파슬리가,

네 번째에 차와 양파·터머릭이 있다.

두 번째, 같은 해 미국의 유력 시사주간지 “타임”이

건강특집에서 주식이 아닌 식품으로 선정한 ‘10대 건강식품’은 녹

차·토마토·시금치·적포도주·견과류·브로콜리·

귀리·연어·마늘·블루베리였다.

녹차가 10대 건강식품이자

4대 항암식품의 하나로 발표된 것이다.

◆ 茶는 불발(不發)?!

피곤을 풀고 근심을 잊는 데는

잠이 보약이라고 주장하는 잠꾸러기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일본의 ‘사석집(沙石集)’이라는 책에

차의 효능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스님이 차를 마시고 있는데

소치는 사람이 지나다 물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차라는 것인데 세 가지 덕이 있지요.

첫째는 잠을 쫓고, 둘째는 소화를 돕고,

셋째는 불발(不發: 마음의 욕심이 발하지 않는다는 뜻)이 되는 것이라오.”

이 말은 들은 소치기가 말하였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는 것이 즐거움인데

잠을 이루지 못하면 곤란하지 않겠소.

항상 배불리 먹지 못하는데 소화가 잘 된다면 이 또한 곤란한 일이요.

하물며 不發하여 마누라를 껴안을 수 없게 된다니 딱 질색입니다.”고.

무릇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음식이 있고 만병통치약이 있겠는가?

차가 5천여년간 인류의 사랑을 받아 왔지만

모두가 좋아하고 누구에게나 다 좋은 것은 아니리라. <계속>

김 동 곤 (쌍계제다 대표)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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