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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6년 전 한의계의 선배인 A선생이

일찍이 교직을 버리고 고시준비를 하실 때

너무나 신경을 많이 쓰시고 위장병이 생겨서

드디어 모 병원에 장기입원하였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점점 쇠약해질 뿐 급기야 정신도 들락날락하고

음식도 미음조차 넘기지 못하고

약을 먹어도 토하고 물을 마셔도 토하여

이제는 말도 못하는 위기에 직면하였는데

담당의사는 무슨 병인지 판단이 안가니

마지막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겠는데

말을 못하니 어찌 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때 본원(本院)에서 중풍치료를 받아

완쾌한 충남상회 H씨와 남매간이 되는 처지이므로

그 소식을 듣고 문병을 가서 本院을 소개하게 되어

환자 부인은 그에게 매달려서 한이나 없이

꼭 왕진을 한번 부탁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선생은 왕진갈 시간여유도 없고 거리도 멀 뿐 아니라

타병원에 입원환자를 어떻게 진료할 수 있느냐고 수차 거절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또 와서 간청하는 바람에 선생은 도저히 왕진할 수 없으나

그 환자의 자세한 증상과 과거 원인 경과를 말하여 보라고 하여

우선 비화음(比和飮) 처방을 먼저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되어

진창미(陳倉米) 대신, 미감수(米泔水, 살뜨물)에 극소량을 달여서

병에 넣고 가지고 가서 한 숟가락씩 구토하지 않을 정도로

수분간격으로 냉복(冷服)케 하였다 한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물도 토하던 환자가 그 때 그 때 잘 받아먹더란 것이다.

그런데 회진왔던 의사가 가슴에 청진기를 대려고 하니

환자 입에서 한약냄새가 콸콸나는지라 그 의사는 부인을 향하여

노발대발하며 입원시켰으면 우리에게 맡길 것이지

임의대로 이것저것 한약을 갈아 먹이니 병이 낫겠느냐는 것이다.

그 때 부인은 입원한지도 오래고

선생님들이 별별 치료를 다해도 낫기는커녕

병명도 모르고 이제는 물도 못 넘기고 죽는 길만이 남았는데,

나도 내 정신이 아니고 한이나 없이 한약이라도 한번 먹여 본 것인데

웬일인지 한약을 먹이니 하나도 토하지 않았습니다.

내일은 퇴원하겠다고 말하니 그 의사는 할 말이 없어 나가버렸고

그 이튿날 퇴원하고 그 부인이 H씨를 앞세우고 와서

선생님을 믿고 퇴원하였으니 어느 시간이던지 왕진 좀 해달라고 간청하여

왕진을 계속하였더니 점차 회복되어 일주일 만에 다시 말을 하였고,

일개월 만에 완쾌하여 그 후 보약을 좀 쓰고 지금까지 한의원 치료를 계속한다.

比和飮

人蔘 6g, 白朮, 白茯苓, 神曲 各 4g, 藿香, 陳皮, 砂仁 各 4g, 甘草 2g,

薑三棗二, 米泔水煎湯冷服.

(『醫林』제118호, 1977)

부가설명

위병용 선생(韋炳龍 先生,1910∼?)은 평안남도 출신으로

1930년에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 평남 평원군 등에서

교사를 10여년간 하다가 8.15해방과 더불어 월남하여

한의사인 선친의 유업을 계승하고자 경희대 한의대에

만학의 나이로 입학하여 6년 과정을 마친 후 한의사가 되었다.

위의 의안(醫案, 처방)은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한 구토의 증상을

비화음(比和飮)으로 치료해낸 기록이다.

比和飮은 『東醫寶鑑』雜病篇, 嘔吐門에 나오는 처방으로서

“治胃虛嘔吐月餘不納水穀聞食氣卽嘔聞藥亦嘔”을 주치로 한다.

다만 『東醫寶鑑』에는 진창미(陳倉米, 묵은쌀)가 들어가 있고

복룡간(伏龍肝) 가루도 처방에 포함되어 있지만

이것을 생략하고 米泔水煎湯冷服으로 대체하고 있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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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①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십여년전 일이다.

장충동에 사는 부인으로서 나이는 당시 46세.

이 부인은 부자여서 그런지 교만이 대단하였다.

정신착란증으로 모 종합병원 정신과에 약 8∼9개월간 입원하였으나

차도가 없어 퇴원했다가 명동 모 정신과의원에 1개월반

그리고 S 종합병원 정신과에 약 1개월반 가량 각기 입원했으나

역시 효과를 얻지 못하여 돈도 많이 소비하고

급기야 한방으로 고칠수 없느냐해서 나의 병원으로 온 것이다.

그러므로 시내 일류의 병원에서 조차 고치지 못하는 병을

한의사가 어떻게 고칠 수 있겠는가고 교만을 부리다가

선생으로부터 야단도 맞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柴胡加龍骨牡蠣湯本方 그대로 三劑로써 완전치료하였다.

② 4∼5년전의 일이다.

철원에 산다는 38세의 여자로 7년동안을 일류산부인과를 찾아다니며

진찰을 한 즉 가는 곳마다 자궁암이라 해서 수술을 하라고 권고했지만

이 환자는 죽어라하고 수술을 않겠다고 필경 본원으로 왔기에

복진(腹診)을 하여 본 즉 썩은 냄새가 폭폭 코를 찌른다.

加味四物湯 한 劑로써 下血과 냉이 없어지고 또 두제로 完治를 보았다.

그 후에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들었다.

加味四物湯은 破血之劑로서

蘇木, 紅花, 益母草, 烏藥, 三稜, 蓬朮, 五靈脂, 桃仁, 香附子, 蒲黃 등을 가미하여 투약한 것이다.

(『醫林』제120호, ‘저명한 한의원을 찾아서. 이상점한의원장 李相漸先生’, 1977년)

부가설명

이상점(李相漸) 교수(1931-1983)는 흥남출신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전쟁이 터져 남쪽으로 내려온 후

동양의약대학 6기로 입학하여 졸업한 한의사로서,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초대학장을 역임하고

『한방안이비인후과학』, 『한방약물학』, 『한의학용어사전』, 『신경통의 한방요법』,

『한의학개론』, 『한방신경정신과학』, 『한방처방해설과 응용의 묘결』,

『최신한방약물학』등 각종 저술들을 多作한 한의학자이다.

처음에는 종로 5가에 개업을 하였다가

公醫로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 익산군 여산리, 북일면 등에서

2년간 근무하고 서울로 올라와 제기동에서 약 10년간 개원하다가

1976년부터 회기동으로 와서 개원하였다.

이 醫案은 1977년 간행된 『醫林』제120호의

‘저명한 한의원을 찾아서’라는 연속기획 취재에서

李相漸敎授를 기자가 취재하면서 효과가 좋았던 것을

소개해달라는 요구에 응해서 이야기한 두 개의 치료 경험이다.

아마도 李相漸敎授께서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醫案을 엄선해서 두 개 제시한 것이 분명하다.

①번 醫案은 柴胡加龍骨牡蠣湯으로 46세 부인의 精神錯亂症을 치료한 것이다.

柴胡加龍骨牡蠣湯은 『傷寒論』의 ‘辨太陽病脈證幷治中’에 나오는 처방으로서

傷寒病에 설사시킨 후 胸滿煩驚, 小便不利, 譫語, 一身盡重, 不可轉側 등의 증상을 치료한다.

약물의 구성은 柴胡, 龍骨, 黃芩, 生薑, 鉛丹, 人蔘, 桂枝, 茯苓, 牡蠣, 半夏, 大棗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처방을 精神錯亂에 사용한 것은 현대적 치료 데이터를 참조하여 치료에 임한 것으로 보인다.

②번 醫案은 四物湯에 破血之制인 蘇木, 紅花, 益母草, 烏藥, 三稜,

蓬朮, 五靈脂, 桃仁, 香附子, 蒲黃 등을 가미하여 투약하여 子宮癌을 치료해낸 기록이다.

이 약을 복용한 후에 下血과 냉의 증상이 소실되면서 완치되었다는 것이다.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김남일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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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서울시 종로구 누상동 김〇〇(여자) 44세.

 

병력(病歷): 1962년 10월 5일. 약 10년전부터 소화불량증으로

식후에는 매일 소화제를 복용하며 병원 치료를 계속하면서

용하다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한약도 수차례 복용하였다고 함.

증상(症狀): 식전(食前)에 胃가 살살 긁는 것 같으며 죽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았고

신체는 점점 쇠약해져 가며 변비가 심하여 대변은 1주일에 한번 정도 보나 마나 하며

가슴이 항상 답답하다 합니다.

(첫번째 처방) 우선 변비부터 치료하기로 했습니다.

何首烏湯. 何首烏 五錢, 金銀花 五錢, 甘草 五錢.

위의 약 6첩을 사용하였던 바 가슴 답답증과 변비증은 완치되었으나

소화불량증은 여전하다고 호소하였습니다.

(두번째 처방) 白茯苓 五錢, 白扁豆 三錢, 當歸 一錢, 黃芪 一錢, 山査 一錢,

神麯 一錢, 麥芽 一錢, 人蔘 一錢, 陳皮 一錢, 蓮肉 一錢, 芡仁 一錢, 葛根 一錢,

草決明 三錢, 雲母 一錢, 薄荷 三分, 甘草 五分.

위의 약 60첩을 복용하고 10년 동안 고생했던 병이 완치되어

얼굴에 살도 토실토실 쪄서 남들이 보고 얼굴이 대단히 예뻐졌다 할 정도로

건강이 회복되어 인사로 내원했음을 경험하였습니다.

(1963년, 『醫林』제37호, ‘위장병을 치료한 예’)

부가설명

金長凡(1908∼?)은 함경북도 북청군 출신의 한의사이다.

그는 1959년 한의사가 된 이래로 종로구 숭인동에

壽世局한의원을 개원하여 진료활동을 하였다.

그에 대해 “온후하고 겸손하며 사명감과 연구력을 지닌 신뢰받는 의료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한한의사협회장과 산림청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위의 醫案은 1963년 간행된 『醫林』제37호의

‘위장병을 치료한 예’라는 제목의 글에 나온다.

그는 이 醫案의 서두에서 위장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위장병이라 하면 위하수, 위확장증, 위암, 위산과소증, 위산과다증, 위약증,

급성소화불량, 상식, 위한간위기통, 위궤양, 신경성소화불량, 신경성 위통,

간기통, 위기통, 간위기통, 심하교통, 위완통, 신경성 구토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치료방법에 있어서는 먼저 주증을 결정하여 치료하여야 한다.”

하수오, 금은화, 감초로 구성된 何首烏湯이라는 제목의 처방은 기존 의서에서 찾아내기 어렵다.

같은 이름의 처방이 『瘍醫大全』에 나오지만 내용과 주치가 전혀 다르며,

이 세가지 약물이 포함된 처방으로 加味通聖散이라는 이름의 처방이

『丹溪摘玄』이라는 책에 나오지만 처방 내용에 포함된 약물이 30개에 달하는 대방이다.

그러므로 이 何首烏湯은 金長凡先生의 創方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처방의 경우 保元湯(人蔘, 黃芪, 甘草), 正傳加味二陳湯去半夏香附子蒼朮의 합방에

각종 補脾胃시키는 약물을 가한 것이다. 이 처방도 金長凡先生의 創方으로 보인다.

그는 이 처방의 부수적 효과를

“10년 동안 고생했던 병이 완치되어 얼굴에 살도 토실토실 쪄서

남들이 보고 얼굴이 대단히 예뻐졌다 할 정도로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표현하면서 매우 기뻐하고 있다.

피부 미용에도 효과가 있었다는 이야기로서

脾胃의 기능을 좋아지게 했을 때 陽明에 속하는

안면의 부위의 氣血의 소통이 원활해져서

얼굴에 윤기가 흐르게 된 부수적 효과를 표현한 것이리라.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김남일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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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심장관상동맥경화증, 고협압, 제반순환장애, 비만 - 가미순기산(加味順氣散)

석고 5錢, 방풍 2.5錢, 羌活, 烏藥, 陳皮, 半夏 各2錢,

川芎去油, 白芷, 桔梗, 南星炮, 赤茯苓, 甘草炙, 枳殼 각1錢,

白殭蠶, 乾薑炮 各0.5錢. 이상 水煎服 一日二貼 食間服.

가감법

지나친 肥滿症에 麻黃 一錢을 가함.

血虛할 때는 當歸, 木香 各一錢.

口眼喎斜症에 黃連薑炒, 荊芥, 竹瀝, 薑汁 各八分,

偏身疼痛에는 官桂, 當歸, 乳香, 沒藥 各八分.

肩臂痛에는 薄荷, 桂皮, 蒼朮, 紫蘇葉 各一錢.

四肢痛痺에는 去石膏하고 附子, 官桂 各七分을 가함.

背心痛에는 蒼朮, 蘇葉, 香附子 各一錢을 가함.

脚膝浮腫에는 牛膝, 獨活, 五加皮 各一錢을 가함.

腰痛에는 牛膝, 杜冲, 茴香 各一錢을 가함.

眩暈에는 細辛, 葉茶木 各一錢을 가함.

婦人血風에는 薄荷, 荊芥 一錢을 가함.

胸膈脹滿에는 枳實, 莪朮 各一錢을 가함.

虛汗에는 黃芪 二錢을 가함.

十指가 모두 痲痺時에는 補中益氣湯을 合方함.

더 효과를 바랄 때는

木香, 附子, 羌活, 防風, 烏藥, 麥門冬 各一錢을 가함.

② 중풍좌측반신불수와 수족마비 - 가미사물탕(加味四物湯)

當歸, 川芎, 白芍藥, 熟地黃 各二錢, 南星炮, 瓜蔞仁, 紅花, 桃仁 各一錢.

以上 水煎服, 一日二貼 食間服, 但 服用時 竹瀝汁 三錢을 混入하여 服用하여야만 한다.

위에서 말한 병증의 病源은 주로 血虛한데다 死血이 主因으로 본다.

가감법

언어가 힘이 없고 설이 잘 돌지 않아 말이 어색할 때는 豨簽을 酒洗하여 九蒸九暴한 것을 一兩,

口眼喎斜에는 羌活, 防風 各三錢, 甘草一錢,

眩暈, 痰火熾盛, 心悸亢進에는 半夏, 白朮, 茯苓, 天麻 各一錢, 酸棗仁炒, 陳皮 各一錢을 가한다.

중풍우측반신불수와 수족마비 - 가미사군자탕(加味四君子湯)

人蔘, 白朮 各二錢, 白茯苓, 陳皮, 南星炮, 枳殼, 烏藥, 羌活, 當歸, 黃連酒炒, 黃芩酒炒 各一錢,

甘草 五分. 以上 水煎服. 一日二貼 食間服. 但 服用時 竹瀝汁 二錢을 混合服用하여야 한다.

右側半身不隨의 病源은 氣虛에다 濕痰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手足筋骨疼痛에는 防風, 桔梗, 蒼朮, 枳殼, 川芎, 白芷 各一錢을 가한다.

④ 세균성이질, 아메바성 이질 - 기효산(奇效散)

樗根白皮, 茄子, 蒼耳子, 陳皮, 甘草 各五錢. 以上 水煎服 一日二貼 食前 30분.

아무리 난치한 것이라 할지라도 5첩이면 完治.

⑤자궁내출혈증 - 인혈탕(引血湯)

當歸 一兩, 人蔘 五錢, 牧丹皮 二錢, 荊芥炒黑 二錢. 以上 水煎服,

一日二貼 食前30分이나 食後 2시간.

(「醫林」제35호, ‘申卿熙 先生의 秘方公開’, 19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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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이 같은 질병은 발생사례가 일부에 국한됨으로

그 환자수도 소수에 불과하리라.

그러나 이 환자를 한의약으로 완치하였음으로 보고하여

한의학연구에 일조가 된다면 다행으로 사료한다.

환자주소는 영천구 영해면. 직업은 잠수부. 성명 박○○. 36세.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이래로 계속해서 동해일대에서

잠수부로 활동하여 오던 중 1981년 12월 7일에

역시 잠수작업을 마치고 귀가하였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곤란하여지며 기침도 나므로

양방의원에 가서 계속 치료하였으나 반응이 없을 뿐 아니라

병세는 악화하는 것 같아서 1982년 1월 7일에

경주한의원(車天一 선생의 한의원: 필자주)에 내원하여 치료를 요청하는 것이다.

잠수부의 설명에 의하면

발병당일에는 평상시와는 달리 너무 깊은 수심으로

잠수한 것이 본인의 실수로 즉 수압이 과다하여 체력이

감당하지 못한 것이 발병원인이라고 짐작한다고 한다.

 

…本病은 血流가 응체(凝滯)하여 발생한 증상이라 진단하고

血流를 疏通하면 치유될 것이다. 六鬱湯에 加味한다.

香附子 2錢, 蒼朮, 神麯, 梔子 各1錢, 連翹 2錢(爲君材),

陳皮, 川芎, 赤茯苓, 貝母, 枳殼, 蘇葉 各1錢, 甘草 5分,

加 天門冬, 麥門冬, 五味子, 生地黃, 當歸, 枸杞子, 山藥 各1錢, 大黃, 黃芩 各5分.

1월 7일부터 복용하기 시작하여 20첩 만에 거의 완치되었고,

2월까지 복용하여 60첩을 먹고 완치되었다.

(「醫林」153호, 1983년. ‘水壓에서 發生한 疾病治驗例’)

부가설명

車天一 先生(1916∼?)은 대구시 동성로에서

경주한의원을 개설한 한의사로서 數理學, 脈學, 圖象學 등을

한의학에 접목시키고자 각종 연구 결과물들을 「醫林」에 발표한 학구적인 한의사였다.

위의 醫案은 潛水病에 걸린 潛水夫를 치료했던 경험을 적은 것이다.

위의 환자가 호소한 주증상은 胸廓痞悶, 呼吸困難, 咳嗽 등의 증상이었다.

이 증상은 心肺 두 장의 氣血의 순환이 不順하여 온 것으로 보고 있다.

車天一 先生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心이 小腸에 屬한다. 靜中에 加熱하여 發動하는 機能이 心作用이다.

즉 血(靜)에 加熱動하는 것이 血脈循環의 現狀이 되는 것이다.

肺는 少陰에 屬하는 것은 動中에 加寒하는 機能이 있으니

즉 寒氣(外氣)를 呼吸하여 肺氣出入하니 心의 血液循環과 相對作用하게 된다.

그러므로 心과 肺는 少陽對少陰의 相對이다.

潛水夫가 水中에서 長期間 作業을 하고

또 水壓이 過多하게 人體에 加重하면 心臟과 肺臟에 波及하여

呼吸이 困難하여지고 呼吸이 곤란하여지면 心臟의 血流에 支障이 오게 된다.

血流가 水壓으로 不順하면 血液이 凝滯하고 따라서 心臟이 저하하게 된다.

이러하므로 胸廓이 답답하고 呼吸이 困難하면 發咳하여 自救하려 한다.”

필자가 임의로 생략한 설명문에는

太極, 兩儀, 四象, 八卦로 분화되는 陰陽相對의 원리에 대한 설명이 게재되어 있다.

애초에 車天一 先生은 이 환자에게 補中益氣湯 또는 藿香正氣散을 응용해볼까 생각했었지만

이 두 처방은 陽明을 補하거나 疏通시키는데는 유효할지 몰라도

心肺의 氣血이 鬱結된 것을 疏通하는 때는 不適하리라고 推理하였음으로 쓰지 않았다고 한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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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➀ 고등학교 2학년 야구부 남학생이

야구공에 옆구리를 다쳤다고 침 치료를 왔는데

얼굴에는 뿔긋뿔긋한 것이 양측 볼과 이마와 턱에까지 났으며

보기에도 흉할 정도였기에 五白散을 분말하여 세면(洗面)한 결과

1개월 후에 내원시에는 매끈한 얼굴로서 찾아 왔기에

다시금 사진을 찍었으나 아직 미완성품이어서 차후에 발표하고자 하는 바이다.

➁ 23세의 처녀가 월경부조(經不調)와 동시에 변비가 있으면서도

얼굴에는 기미와 여드름이 양쪽 볼에 보기 싫게 있어서

이약 저약을 사용하였으나 별로 치료의 효과를 못 보았다.

하기에 五白散의 洗面法과 內服藥으로서 桂枝茯笭丸을 長服하게 하였던 결과,

처음에는 얼굴이 따가워서 안 듣는 약이 아니냐고 반문하더니

계속한 끝에 10여일 후로는 현격히 얼굴에 나타난 여드름은 물론이려니와

기미도 벗겨지고 便秘症은 內服後 그리 힘이 드는 편이 아니며

조화롭다 하기에 1개월간 계속 복용을 시킨 후 완치하였음.

(「醫林」제160호, 1984년)

부가설명

이병택(李秉澤) 先生(1935∼)은

1972년 경희대 한의대를 만학의 나이로 졸업하고 종로구에서 만춘당한의원을 경영하였다.

현재는 은퇴하고 아들 이필래(경희대 한의대 84학번) 박사가 한의원을 계승하여 진료중이다.

이 醫案은 미용 관련 치험례를 적은 보기드문 귀한 자료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한의학적 미용관(美容觀)을 피력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얼굴이 곱고 깨끗하며 아름답게 하려고 노력한다.

더욱이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미모는 생명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방의학에서는 안면은 오장과 육부의 거울이라고 하며

오장과 육부에 어떤 질병이 발생되면 안색도 장부의 발현부위에 따라서

변화가 있는 것으로 진단법의 하나인 망진(望診),

즉 관형찰색(觀形察色)으로서 어떤장부의 병인가를 알 수가 있다.

이와 같이 내적인 질환으로서 얼굴색이 좋지 않을 때에는

그 본래의 병을 치료함과 동시에 안면상에 나타난 반점이나

안색의 이상을 없앨수 있으나

이러한 내장기(內臟器)에는 이렇다 할 병은 없으되

얼굴에 기미가 많이 끼거나 죽은 깨가 많으며

혹은 벌거면서 툭툭 튀어나온 것이 심한 것은

마치 종양인양 노랗게 곪는 것이 있어 이것을 자꾸만 짜서

손독이 들어가 나중에는 곰보를 만드는 예도 있다.”

약물 구성은 白殭蠶, 白蘞, 白芨, 白芷, 白附子 등이다.

그 각각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① 白殭蠶: 面上黑䵟, 一切金瘡.

② 白蘞: 面上疱瘡, 凍耳, 金瘡, 撲損, 刀箭, 湯火灼傷.

③ 白芨: 生肌, 療面上皯皰.

④ 白芷: 排膿, 止痛, 潤顔色, 長肌膚, 皮膚風, 面皯疵瘢, 熱毒.

⑤ 白附子: 療面痕, 䵟䵳, 瘢疵, 面部百病

이 약물들을 사용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지방질 음식과 탁한 식사는 금기로 하고 가급적 채식을 권하면서

아침에 세면을 할 때 먼저 비누로 씻고 맑은 물로 씻은 후

이 다섯 약물 즉 五白散을 차 숟가락으로 한 숟가락 정도로

손바닥에 물과 혼합하여 죽으로 만든 다음 얼굴에 문지르는 것이다.

약 1분쯤 있다가 맹물로 얼굴을 닦아낸 다음

그대로 아무 것도 바르지 않도록 할 것이며

정 바르고 싶으면 피부에 별로 자극제가 아닌 순한 화장품을 사용하게 한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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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성명 김○○. 44세 여자. 주소 서울 영등포구 동작동.

기왕증(旣往症)

약 6년전부터 빈혈(貧血)과 후두통(後頭痛)으로

백방으로 치료하였으나 효과가 없다고 한다.

위하수(胃下垂)로 지금도 소화에 약간의 고통을 느낀다 한다.

현재증상

6일전부터 후두(後頭)에 통증이 심하고

목을 좌우로 회전하기가 거북하고 야간에는 숙면을 취할 수 없고

눈이 빠지는 것 같고 미열(微熱)이 있으며 통증으로 입맛도 잃었다.

4일전 모 종합병원에서 종합 진찰을 받고 뇌 X-Ray를 찍은 결과

후두골(後頭骨)에 약 1.5cm 직경의 종양이 발견되어 이를 수술을 하여야 한다고 판정을 하였다.

그러나 경제적 사정과 수술의 두려움으로 한방치료로 가능하냐고 내원하였다.

현재소견

중등대(中等大)의 체격이나 영양은 불량하고 안면은 약간의 빈혈로 창백하다.

맥(脈)은 침세삭(沈細數)하나 힘이있고 혈압은 70mm Hg〜110mm Hg로 거의 정상이고

복부(腹部)를 진찰한즉 중완(中脘)부위에 약간의 저항이 있고 하복부(下腹部)는 무력했다.

후두부(後頭部)에 통증이 심하고 손을 대니 열이 심했다.

얼굴과 목을 회전 및 굴신하기가 어렵다 하여

뇌종양으로 판정하여 아래기록한 약(太乙淸腦散)을 6첩을 지어 주면서

우황청심환(牛黃淸心丸)을 每一丸씩을 貼藥 달인 물로 겸용시켰다.

경과

1일 3회 食後服으로 2일간 약 6첩과 牛黃淸心丸 6환을 복용하고

내원한 환자는 후두의 통증도 가벼워지고 얼굴과 목의 굴신이 많이 부드러우며

야간에는 숙면을 취할 수 있고 후두의 열도 많이 없어졌다고 매우 기뻐했다.

소변이 다량으로 나오고 통증이 가시니 입맛이 조금 있어 식사도 처음 많이 했다고 한다.

본인은 매일 3첩씩 食後服으로 1일 3회를 牛黃淸心丸 1丸과 겸용하라고 하고

지방질이 많은 육류는 삼가고 김, 미역 등 해산물을 많이 섭취하고 과즙(果汁)을 많이 섭취하라고 일렀다.

15일간의 투약으로 완쾌하여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재하고 그 후 통증이 없었다.

본인은 本外方을 소아의 경기(驚氣), 원인불명의 발열(發熱),

복수(腹水), 뇌막염(腦膜炎) 등에 써서 多大한 效力을 得하였다.

태을청뇌산(太乙淸腦散)

澤瀉, 猪苓, 滑石, 赤茯笭, 白茯苓, 羚羊角 各一錢, 釣鉤藤, 天麻 各五分, 燈心 一團.

부가설명

김우식(金雨植) 先生(1940〜?)은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하여 1964년에 졸업하였다.

1967년부터 영등포구 흑석2동에 보성한의원을 개원하여 환자를 진료하였다.

이 醫案은 1972년 화요한의학연구회에서 간행한 「火曜漢方」창간호에 나온다.

이 醫案에 나오는 처방은 경희대 한의학과 13기 출신 한의사들이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발간한 「東醫臨床處方集」에 수록된 洪性初 敎授의 처방이었다.

이 처방은 「方藥合編」中179에 수록된 太乙丸의 加減方이다.

金雨植 先生은 위 처방을 용량을 두 배로 증량하고

白附子 五分, 元白殭蠶 一錢五分, 白芍藥 二錢, 貢砂仁,

白荳蔲(口味가 없을 때)一錢씩을 加味해서 투약하였다.

그 후 이 처방을 기본으로 증상에 따라 가감하여 실패한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김남일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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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① 천포창병증(天疱瘡病症) 치험례

이○○. 여자 57세. 1973년 7월 2일 필자의 진료소를 찾아와서 필자에게 진료를 원한 바 있다.

2년 전부터 현 증상이 발생되어 서울 시내 큰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바 있고,

1972년 8월 모 병원에 약 1개월 간 입원가료 한 후에

퇴원을 하여 집에서 계속 치료하였으나 별 차도가 없다고 한다.

각 병원에서 진단병명이 天疱瘡이라는 것만 공통된 사실이라 하였다.

주치증후로서 피부에 수포, 입술과 혀의 궤양, 황적색의 물집을 형성하여,

물론 식사의 불편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동통으로 고생중이라 하였다.

바르는 약을 사용해도 차도가 없으리라 생각되어 심사숙고 끝에

이 환자에게 이심사미패독산(二十四味敗毒散)을 투여하기로 결심하고,

1973년 7월 2일 10일분, 같은 달 13일에 또 10일분, 7월 23일에 10일분과

그 후 100첩에 이르러 완치가 되어 참으로 신기한 일이라고

그가 거주하는 인근 동리 사람들도 감탄을 하고 있다.

*천포창(天疱瘡)

천포창은 피부와 점막에 수포를 형성하는 만성적인 물집 질환이다.

대부분의 환자는 혈액 내에 각질형성 세포 항원에 대한 자가항체를 가지고 있는데,

이 자가항체가 천포창의 발병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크게 표피 내에서 수포가 형성되는 위치, 임상 소견, 자가항원에 따라

보통 천포창과 낙엽 천포창으로 나뉠 수 있으며,

이 외에도 약물유발 천포창, 종양수반 천포창 등이 있다.

* 발병위치 : 피부와 점막

② 베체트(Behget) 증후군의 치험례

박○○. 여자 24세.

이 환자는 일본에서 출생한 재일동포로서 1970년도에 발병하여

일본 모 병원에서 Behget 씨병이라 진단이 내려졌다.

1974년 11월 2일 필자가 치료를 맡게 되어 초진한 바에 의하면

상술한 Behget 증후군이 구비되어 있으므로 二十四味敗毒散을

매일 1첩씩 물에 달여 1일 3회 나누어 복용케 하였다.

1개월 간 이곳 서울에서 치료해본 결과 순조롭게 호전되어

다시 5개월 분을 조제하여 일본 자택에서 계속 복용함으로써 완치된 사실을

아버지 되는 분이 금년 봄 필자에게 말해본 바가 있다.

이 병은 재발의 염려가 있어 장기간 치료를 한 것이다.

(「東洋醫學」제3권 제1호 통권 제6호, 동양의학연구소, 1977)

부가설명

박병곤(朴炳昆, 1912-1989) 선생은

경희대 한의대 교수로 봉직하면서 동서의학연구소 제1연구실장,

한방병원 중풍센타실장, 부속시내한방병원원장 등을 역임한 인물로서

1971년에 40여년 간의 임상경험을 「漢方臨床四十年」이라는 책으로 엮어낸 바가 있다.

이 두 개의 醫案은 1977년 「東洋醫學」제3권 제1호에

‘二十四味敗毒散으로 臨床應用에 卓效를 본 두 가지 皮膚病’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소개되어 있다.

당시 매독과 베제트 씨병의 치료에 대한

한의학계의 치료를 위한 노력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醫案일 것이다.

二十四味敗毒散의 구성과 용법에 대해 그는

당귀, 천궁, 생지황, 숙지황, 백작약, 우슬, 방풍, 형개, 백지,

방기, 인동, 길경, 강활, 독활, 백선피, 의이인, 연교, 목통, 진피,

감초, 황백, 지모, 치자, 황련 각 3.74g,

매첩을 土茯苓 150g 달인 물 1000cc에 반일 될 때 까지 졸여

1일 3회 食遠分服한다고 하였다.

이 처방은 李常和 선생의

「辨證方藥正傳」의 增補方에 수재된 것으로서 주치는 양매창(楊梅瘡)으로서 일명 매독(梅毒)이다.

朴炳昆 先生은 “天疱瘡은 楊梅瘡이 挾濕으로 인해 변한 것이며,

Behget 증후군 역시 風, 濕, 熱毒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처방으로 「萬病回春」에 수록된 二十四味風流飮이 있는데,

「東醫寶鑑」에서는 三黃敗毒散이라 하였다고 하였다.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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