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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향나무는 1990년대 후반

아파트가 들어설 때에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었던 적이 있다.

이 향나무는 당시에 어느 개인주택의 마당 끝에 자라고 있었다.

아파트 시공회사는 이 향나무를 뽑아내야 공사를 할 수 있다고 하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지켜 준 나무를 없앨 수 없다면서 반대하였다.

그래서 이 향나무는 아파트 공사 중에 잠시 자리를 떠났다가

공사가 마무리 된 후에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결국 이 향나무가 마을을 지켜준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이 향나무를 지켜준 셈이 되었다.

 

 

시흥시 하중동의 관곡마을에 고목의 향나무가 있다.

보호수의 향나무이다. 보호면적은 30㎡이다.

이 향나무는 수령이 1,000년이라 기록하고 있다.

나무 나이에 비하여 외부형태가 곱게 보였지만 믿을 수밖에 없다.

오래된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생육이 양호하다.

약간 휘어진 굵은 줄기와 옆으로 뻗은 가지의 형태가 아름답다.

이 향나무는 이 마을이 생길 때에 식재한 나무라 하여 신성시하고 있다.

마을을 지켜주는 신목으로 생각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음력 정월에 길일을 택해서

이 향나무 앞에서 마을의 안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고 있다.

이 향나무는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보다 도심이라 하는 편이 좋겠다.

아파트가 즐비한 곳의 도로 옆에 작은 공원이 마련되었고,

그 공원의 동산에 우뚝 솟아 있다.

일설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의

이 향나무와 관련한 꿈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열병(장질부사)으로 고생하거나 목숨을 잃어가고 있을 때였다.

이 마을 출신의 권씨 성을 가진 사람이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마을을 향하여 몰려오는 꿈이었다.

권씨는 열병을 가진 아이들을 물리치지 않으면

마을 전체에 병원균이 돌아 큰 일이 날 것 같았다.

그때 그는 아이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는 아이들이 잘 볼 수 있는 동산 위의 향나무에 올라가서 호통을 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향나무에 걸터앉아 호통과 함께 지팡이를 흔들며 아이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랬더니 그 많은 아이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후 며칠이 지나자 열병이 멈추고 마을이 평온해졌다.

한편 인근에는 향토유적으로 알려진 관곡지(官谷池)가 있다.

이 연못은 조선시대 강희맹이 세조9년 명나라에 갔다가

올 때 가져온 연꽃 씨를 처음으로 심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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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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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늘 푸르게 자라는 상록수 중 가장 오래 자라는 나무가 서초동에 있다.

향나무이다. 보호수이다. ‘마뉘꿀(마뉘골) 고개’를 지날 즈음에 있다.

이 고개는 강남고속터미널에서 대법원으로 고갯길을 넘어가다

국립중앙도서관 고갯길의 작은 돌에 글씨를 새겨 안내하고 있다.

‘옛날 반포동 계곡에 마뉘골이라는 마을이 있어서 불린 고개로

호랑이나 산적들이 자주 나타날 정도로 으슥한 곳이었다 함’이라 적혀 있다.

보호수의 향나무는 이곳의 바로 옆 서초사거리에 있다. 서초역이다.

이 향나무는 교차로 한가운데에 서서 밤낮으로 오가는 차량 행렬을 내려다보고 있다.

대부분 법원이나 검찰청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의 어두운 표정을 지켜보고 있다.

이 향나무는 고려 태조 왕건의 후손이

나라의 발전을 기원하기 위하여 심었다는 설화가 구전하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온갖 비바람을 견뎌내며 서초동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개국을 지켜봤으며,

1457년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로 귀양을 가던 모습도 지켜보았다.

단종은 이 향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 영월로 유배를 갔다.

이후 인근에 사는 백성(주민)들이 이 향나무를

수호신으로 삼아 각별히 관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예전에는 어느 동네의 수호신이며 신목이었던 셈이다.

이 향나무가 있는 곳은 예전에 유명인의 집터이었다.

대법원이 들어서고 도로가 나면서 집이 철거되었으나

정원의 향나무는 오랜 논란 끝에 살려 두었다.

오래된 나무를 베면 화를 입는다는 이야기에다가

수령이 오래된 아름다운 나무를 보호하자는 의견도 있어서

결국 살아남게 되었다.

그 후 이곳의 향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1968년 보호수로 지정된 이후 ‘서초동 향나무’ 또는 ‘대법원앞 향나무’ 등으로 부르다가

2009년 11월 시민공모를 통하여 ‘천년향’의 이름을 얻었다.

관계기관은 명명식까지 성대하게 치르는 등 대접을 해주었다.

매년 정기적으로 청소도 하고 영양분도 투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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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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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심었을까.

강남구 도곡동의 고목 느티나무는 조선시대 효자

김의신(金義信)의 집터로 알려졌으니 자생이 아니라 심었던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심은 자가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다.

조선시대에 이곳에 살았던 김의신은 40세 때 느티나무 밑에서 백일기도를 하다가

산신령의 말에 따라 자신의 허벅지 살을 잘라 고아드려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김의신을 기리기 위하여 느티나무 뒤쪽에 효자비를 세웠다.

이 느티나무는 수령 73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거수이다.

서울시 느티나무 중 가장 오래된 나무이다.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수형이 웅장하다.

이 느티나무는 조선시대 중엽부터 말죽거리 역마을 주민들이

매년 10월에 질병을 막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동제(당산제)를 지내던 곳이다.

당집은 없고 느티나무가 수호신으로 남아 신목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양재역 부근의 말죽거리 역마을은 과거 법정동으로 역삼동에 소속되어 있던 마을이다.

남쪽지역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이거나 서울에서 지방으로 갈 때 거쳐 가는 곳이며,

이때에 이곳에서 ‘말죽을 쑤어 먹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 느티나무는 야트막한 매봉산 건너편의 아파트

단지 내의 어린이놀이터 옆에 위치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때 느티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건물 층고를 낮추고,

느티나무의 생육을 위하여 주변의 공간을 확보하였다.

주변 일정범위에 철망의 울타리를 설치하여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도록 하였다.

이 느티나무가 인접하고 있는 곳은 산지형 근린공원이 있다.

즉 도곡공원의 둘레에 작은 길이 나있어 아파트 주민들이 짧은 시간 산책을 할 수 있다.

주변의 정원도 꽃들과 함께 조각상들이 함께 장식되어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느티나무 앞은 보호수 안내판과 제사를 지내기 위한 상석이 놓여 있다.

현재 강남문화원과 역말전통문화보존회 주최로

역말도당제 및 잿마당제 등을 겸한 ‘역말문화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역말을 떠나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옛 주민들도 도당제에 참여함으로써

역말 사람의 일체감을 확인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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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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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는 최고의 길상목으로 꼽는 나무이다.

회화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 또는 큰 인물이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들이 태어나면 회화나무를 심고, 선비나무로 부르는 이유가 그것이다.

회화나무는 매우 귀하고 신성하게 여겨 궁궐, 양반집, 서원, 절에 심었다.

서울시 중구 정동도 원래 궁터이었다.

캐나다 대사관이 위치한 정동의 길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특히 덕수궁길이 유명하다.

이 길은 덕수궁의 대한문에서 서대문 쪽으로 경향신문사까지 이어지는 꼬불꼬불한 곡선의 길이다.

문화와 역사가 서려있는 녹음의 길이다.

이 길에 오래 된 회화나무가 있다. 보호수이다.

이 회화나무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야기가 전한다.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이 회화나무 바로 옆에 캐나다 대사관이 있다.

2003년 캐나다 대사관을 신축할 당시에 이 회화나무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건축 과정이 진행되었다.

캐나다 대사관 신축 당시의 이 회화나무는 죽기 직전이라 할 만큼 좋지 않았다.

당시의 대사관 건물은 죽어가는 회화나무였으니 베어내고 넓게 지을 수도 있었다.

대사관 건물은 이 회화나무의 뿌리 부분을 고려하여 나무가 사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이 회화나무의 뿌리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하여 일부러 대사관 건물을 뒤로 물러서 건축하였다.

대사관 건물은 굴곡진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렇듯 이 회화나무는 세심한 관리 끝에 싱그러운 모습을 되찾아 대사관의 자랑이 되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주한 캐나다 대사관은 2007년 12월에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환경재단이 주는 녹색 특별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정동의 역사와 오래도록 함께 한 회화나무는

캐나다의 산과 숲을 형상화한 대사관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정동의 길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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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