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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가 왜 이럴까.

줄기가 위로 곧게 뻗은 것이 있는가 하면 구불구불한 것도 있다.

줄기가 아래로 처진 것도 소나무도 있고, 꼬인 것도 있다.

수형이 둥그스름하게 모양을 갖춘 종류도 있다.

밑동에서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소나무도 있다.

분류가 참으로 어렵다.

밑동에서 줄기가 갈라지는 소나무 종류도 또 다시 세분하고 있다.

여러 줄기가 지표면 가까이에서부터 갈라지면 다행송(多幸松)이라 하고,

지표면 위쪽 줄기에서 갈라지면 반송(盤松)으로 갈라본다.

비슷한 말로 다지송(多枝松), 천지송(千枝松), 만지송(萬枝松),

조선다행송 등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아무렇든 강화도에 특이한 소나무 종류가 있다.

아름드리의 줄기를 가진 것이 아니지만 오래도록 살고 있는 소나무 종류이다.

선원면 냉정리의 선원초등학교에 있다.

선원초등학교는

1922년 선원보통학교 설립인가를 받고, 1923년 4월 2일 개교한 학교이다.

이 학교의 교목이 ‘천지송’이다. 건물의 정중앙에 심어진 것이다.

이 천지송은 이 학교의 상징목이다.

이제는 학교 전통만큼이나 학생과 교직원, 지역 주민들의 큰 자랑거리가 된 나무이다.

이 천지송은 선원초등학교 1회와 2회 졸업생이 기념식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 이 천지송은 어떤 나무일까.

모양이 특별난 소나무 종류이다.

줄기가 지표면 가까이에서 갈라지므로

다행송이라 해야 하지만 흔히 반송이라 부르고 있다.

여기에서는 반송이라 부르기로 한다.

이 반송은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이 반송은 200년의 세월동안 잘 자라고 있다. 교정에서도 오래도록 살고 있다.

어린 학생들이 입학과 동시에 6년 동안 함께 하였던 나무이다.

아이들은 술래잡기를 하며 이 반송 주위를 여러 번 돌아다녔을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뭐가 그리 재미가 있는지 열심히 뛰어 다녔을 것이다.

어렸을 때의 학교 운동장이 너무 크게 느껴졌던 것처럼

어린 학생들은 이 반송과 함께 하면서 얼마나 크고 위용스럽게 보였을 것인가.

어느 장난꾸러기 학생은 다칠까봐 훈계하는 선생님의 말도 듣지 않고

이 반송에 올라가 놀기도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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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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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둥구나무에서 놀던 추억이 그리운 사람들이 많다.

둥구나무는 무더운 한여름에 시원한 그늘과 휴식의 장소를 제공하였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을 찾았다.

아이들은 낮잠 자다 말고 그냥 둥구나무로 갔다.

친구들 만나는 장소처럼 그냥 보고 싶어 둥구나무로 갔다.

심심하여 할 일이 없어도 그냥 둥구나무를 찾아 갔다.

둥구나무 아래는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며 노는 곳이었다.

아줌마들은 이런저런 동네 사람이야기를 늘어놓았던 곳이 둥구나무 아래이었다.

땅따먹기, 공기놀이, 고누놀이를 하며 놀았던 곳이다.

교동도 양갑리에도 둥구나무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해나무’라 부르는 커다란 느티나무이다. 보호수이다.

이 느티나무는 단옷날에 처녀 총각들이 동아줄을 꼬아 그네를 만들어 놀았던 나무이다.

다른 동네 사람들도 지나다 그네를 뛰었다.

젊은 아줌마들이 타는 쌍그네는 그야말로 그네뛰기의 최고 멋이었다.

높이 올라 느티나무 잎을 입으로 따서 물고 내려오는 그네 기술은 최고의 멋이었다.

이 느티나무는 마을의 당산목이기도 하였다.

나뭇가지 하나 마음대로 자르는 것을 두려워하였던 신목이었다.

또한 이 느티나무가 자라는 곳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양갑리에서

산세나 지세로 보아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부자가 되는 최고의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양갑리 마을에는 부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이 느티나무는 만세운동이 일어나던 1919년(기미년) 여름에 가지가 꺾어지기도 하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당시 태풍으로 직경 50cm 정도의 몇 가지가 잘렸다.

그 후 가지가 자라나 오늘날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이 느티나무는 교동도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말없이 묵묵히 지켜보았을 전설의 느티나무이다.

또한 봄에 나뭇잎이 일제히 피었다가 가을에 잎이 일제히 떨어지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않으면 그해 농사가 흉작이 든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영농기술이 발달하면서

민간에서 이어지는 전통지식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구전은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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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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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와 인접한 곳에 교동도가 있다.

교동도는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한의 연백군과 마주보는 대한민국의 섬이다.

한반도에서 14번째로 큰 섬이다. 화개산(華盖山, 269m)이 가장 높은 산이다.

교동도는 강화도 창후리선착장에서 월선포선착장까지 15분 동안 배를 타고 다녔다.

물때가 나쁜 날은 수심문제로 멀리 돌아야 해서 1시간이 걸리기도 하였다.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된 후 출입이 한결 쉬어졌다.

그래도 최전방의 섬인지라 검문소에서 외부인의 출입 확인을 거치고 있다.

이웃 강화도와 석모도가

간척으로 현재의 해안선을 가졌듯이 교동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화개산, 수정산, 율두산이 만드는

삼각점 사이의 갯벌과 바다를 메워서 넓은 농경지를 얻었다.

교동평야를 만들었던 것이다.

교동평야의 끝자락에 바닷가와 인접한 난정저수지가 있고,

그 인근 마을에 고목의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다. 보호수이다.

이 은행나무는 교동면 무학리에 있다.

무학리는 고려 중엽에 무산서리라 불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은행나무를 ‘무산서리 천년수’라 부르기도 한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은행나무는 마을의 한 가운데에 버티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잘 사는 부잣집의 뒤쪽에 은행나무가 있었다.

어느 날 부잣집은 화재가 났다. 그때 은행나무도 함께 불에 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 은행나무는 줄기 속까지 불에 타지 않고 겉의 잎가지만 불에 타서 그런지

이듬해 봄에 새가지가 나오고 잎이 돋아나서 자랐다.

이 나무가 현재 무학리의 천년수 은행나무이다.

지금도 은행나무 주변을 파면 숯과 부잣집의 기와조각이 나온다.

그리고 은행나무에서 놀다가 떨어진 사람은

떨어진 곳을 파내었을 때에 나오는 숯을 달여서 약으로 이용하였다.

아픈 곳이 신통하게 나았다. 이 은행나무는 신목으로 숭배되고 있다.

마을의 동제를 지내지 않지만 마을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정월대보름에 치성을 드리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무속인들이 종종 찾아와 푸닥거리를 하거나 신내림을 받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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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