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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차를 만들다보니

상미감각(嘗味感覺)이 늘어 났달까(?)

이리저리 조합해

만든 차 한 모금을 입안에 물은 다음,

혀끝으로 요리조리 굴리면서

맛을 음미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먼저 코로 향을 맡아 본 다음

뇌로 이 향을 분석하기 위해(?) 잠깐

눈을 감고 되새겨 보는 버릇도 생겼다.

필자 역시 향미에 대한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몸인지라

딱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변수에 따라

조금씩 다른 미세한 맛의 차이가 있음을

감지할 수는 있는 듯하다.

최근에 약탕기에 조예가 깊은

권원장의 권유를 받고 사물탕을 원방대로

(당귀, 천궁, 작약, 숙지황 각 5g) 1제 20첩을

물 9000cc를 넣고 스테인리스 찜 솥에서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으로 달여서 맛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동안 사물탕을

본방대로 처방해 본적도 별로 없었지만,

대부분 약탕기에서 의례적으로 약을 달여 왔던 터라

팩으로 포장된 약들을 일일이 맛을 보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스테인리스 찜 솥에서

끓고 있는 약들을 바라보면서

거기에서 올라오는 맛있는(?) 한약의 향을 맡아보니

그 동안 내가 뭔가 소흘한 점이 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생동감이랄까.

본초를 찾아다니며 본초의 현장에서 살아있음을 느꼈던

그 생생한 느낌들이 약을 달이고 있는 현장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물탕 한 제 분량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 양이지만

그것이 물과 결합해 끓으면서 내는 향과 맛은 대단함 그 자체였다.

약탕기의 편리성에 취해서

그 동안 생생하고 역동적인 한약의 힘(향과 맛 즉 四氣 와 五味)을

재량해보는 과정에 대해서 등한시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밀려온다.

자연에서의 살아있는 약초의 힘도 중요하지만,

원내에서 약을 달이는 과정에서도 약초의 힘을

그대로 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점검해 보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약을 달이는 과정에서도

스테인리스 솥이니, 옹기솥이니, 압력식이니,

무압력식이니 약탕기니 등등의

우열과 장단점을 비교하는 것을 떠나,

한의사의 한약에 대한 사랑과 자신감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차제를 만들어 가면서

한약재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에 눈을 떴지만,

탕제가 가지고 있는 웅장한 힘을 차제가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차제는 경청함을 만들고, 가벼운 터치로 몸을 움직이지만,

탕제는 웅장한 힘으로 병마를 탕척해 버리기도 하고,

몸에 부족한 기운을 만들어 북돋아 주기도 한다.

적절한 제형을 선택해

환자의 병을 치료하고 음양의 조화를

맞추어 나가는 것은 한의사의 역할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디테일의 힘이 필요하다.

약재의 선택, 약 달이는 용기와 약탕기의 선택,

약 달이는 화력의 조절, 물의 선택과 양 조절,

약 달이는 시간과 온도 등 여러 가지 변수를 재량하여,

애정을 가지고 환자를 보살펴 나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 먼저 디테일한

약맛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예민한 감각을 살려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여진다.

은탕왕을 도와 은나라를 연 재상 이윤은

요리사로서 한의약의 鼻祖가 되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이윤의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우리 한의원의 약맛을 보는 것은 어떨까?

허담 / 한의사․(주)옴니허브 대표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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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