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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허난(河南)성 중심지인 정저우(鄭州)에서

남쪽으로 70여 km 떨어진 곳에 위저우(禹州)가 있다.

위저우 시내를 들어서니 약성로(藥成路)란 도로이름도 보인다.

처음 찾아가 본다는 기사가 한두번 버스를 돌리더니

전방에 위저우 한약시장이 나타난다.

입구를 알리는 거대한 돌기둥 문에는

위저우 중약재전업시장(禹州中藥材專業市場)이란

큼직한 붉은 색 간판이 붙어 있다.

금은화와 국화 그림을 양각으로 돌기둥에 수를 놓았다.

위저우 한약시장은 중국의 한약 발상지 중의 하나로

신의(神醫) 편작(扁鵲), 의성(醫聖) 장중경(張仲景),

약왕(藥王) 손사막(孫思邈) 등은 모두 일찍이 위저우에서

의술을 행하고 한약을 채집하였으며,

‘약은 위저우의 것이 아니면 향이 없고,

의술은 약왕을 만나지 않으면 오묘함을 알 수 없다’라는

전설이 오늘날까지 전해온다.

이 시장의 중심지에는 100세 이상 장수한 것으로 알려진

손사막의 하얀 동상도 서있다.

이 한약시장은 당(唐)에서 비롯되어

明淸시기에 전국 4대 약재 집산지의 하나가 되었다.

1996년 중국의 17개 한약 전문시장의 하나로 우뚝 섰고,

2003년에는 중국의 10개 우수 한약 전문도매시장이 되었다.

3층짜리 건물에 입주한 상점이 2천여개,

취급 한약 2600여종,

종사자는 1만명 이상이라고

시장 입구의 홍보간판에서 설명하고 있다.

시장으로 들어서니 시멘트 바닥에는

푹푹 찌는 여름 햇빛아래 한약 말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입구에 널려 있는 첫 번째 한약이 지황.

아무렇게나 던지듯이 펼쳐 놓은 채로 말리고 있는 중이다.

한쪽에는 지황에 붙은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삽으로 지황을 떠서 바람에 날리고 있다.

상점 벽에는 익모초를 건조시키려 세워 놓았고

그 옆에는 익모초 전초를 절단하는 기계가 자리 잡고 있다.

시장 광장에서 가장 양이 많은 것이 익모초였다.

시호, 맥문동의 노란색 그리고 익모초의 초록색이 어우러지고

대기 중으로 발산하는 약재들의 향이 배여 있는 이곳 한약시장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큰길 뒤로 돌아갔다.

골목 안 상점에 산뜻하게 제작해둔 한약 간판들이 즐비하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정열적인 빨간 바탕의 나무판에

흰 분필, 또는 분홍색의 문에 빨간 붓글씨로 쓴 한약 이름들이 이채롭다.

모두 다 중국스럽고 활기차고 멋진 홍보물들이다.

붓과 분필로 적어 놓은 수기의 한약 이름들로 가득 찬

이 시장은 플라스틱과 금속이 아직은 침범하지 못한

미답의 지역처럼 보인다.

시장 내 한 상점에서는

통에 물을 넣고 천궁을 불리고 씻고 말린다.

깨끗하게 세척하는 모습이

중국 한약의 발전상을 보는 것 같다.

글ㆍ사진 = 박종철 교수

국립순천대학교 한의약연구소장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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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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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河南)성 성도인 정저우(鄭州)는

오랜 세월 중원문화권에서

넉넉한 어머니 품이 되었던 도시라고 볼 수 있다.

중국 대륙을 고속도로로 남북과 동서로 잇는

교차지점인 정저우는 교통의 요지이다.

 

 

중원지역인 허난성의

4대 회약(怀藥,懷藥)을 찾아 가본다.

4대 회약이라 함은 정저우에서 90km 떨어진

자오쭤(焦作)시 주위에서 생산되는

산약, 지황, 우슬, 국화 4종류의 한약을 말한다.

즉 회산약, 회지황, 회우슬, 회국화가 이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회(怀)’자는 고유의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북위시대 이후에는 회주(怀州)로 부르다가

원·명·청 삼대에는 회맹로(怀孟路),

회경부(怀慶府)로 바꾸어 불러 온 것으로,

지금의 자오쭤시 부근의 원셴(溫縣), 우즈(武陟), 보아이(博愛),

멍저우(孟州), 친양(沁陽) 일대를 아우른 이름이다.

필자와 함께 한약 조사단 일행이 찾은 자오쭤시 주위는

기온이 연평균 12~15도이고 사계절이 분명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을 가지고 있어 4대 회약을 재배하는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기원전 1066년,

주 무왕(周武王)은 군사들을 이끌고 후셴(戶縣)을 출발해

지금의 자오쭤시인 회부(怀府)에 이르렀다.

6월에 이르러서 더위가 너무 심하여

군사들이 견디기가 어려웠고 더구나 먼 여정을 행군하여

80~90%는 병이나 피로로 쓰러졌다.

회부 백성들은 병사들의 질병소식을 듣고

집에서 심은 국화, 지황을 병사들에게 볶아 먹여

더위를 해결하게 하였으며,

우슬을 끓여서 근골을 조절하게 하고,

산약을 주어서 체력을 보충하게 하였다.

수일 후에 군사들의 원기가 크게 진작되어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얻었다.

무왕은 즉위한 후에 회부 백성의 온정에 보답하기 위해서

백관들을 이끌고 친히 회부에 가서 상을 주는

성대한 의식을 거행하였으며, 그때 받았던 신기한 한약으로

‘4대 회약’이라는 명칭을 하사하였다.

이로 인해 4대 회약의 명성은 멀리 전해지고

역대 황실의 조공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다.

 

 

자오쭤시 외곽지역에 있는 산약 재배지를 둘러보았다.

면적은 한국 평수로 3300평 정도이다.

드넓은 밭은 온통 산약을 재배 중이다.

입구에는 ‘4대회약 농업표준화시범기지’라고 쓴

돌로 제작된 표지판이 보인다.

대형 입간판에는

‘생산량이 풍부하고 질이 좋으며

저항력이 강한 본고장의 품종 선택’ 등

무공해 산약의 생산기술과 표준화 관리 규정이 적혀 있다.

밤늦게 찾아간 지황 재배지도 역시 면적이 어마어마하다.

길옆에 위치한 지황 밭에는 황토 먼지를 쓴 지황들이

기운차게 자라고 있었다.

이 회약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그 약효를 공인받았고

현재도 지역을 상징하는 약용 작물로

중원 땅 아득한 들판 저 너머까지로 지경(地境)을 넓혀가고 있다.

 

 

회약 가공회사도 산지 근처에 있었다.

GMP 시설이 되어 있는 이 회사에선 4대 회약을 응용한

다양한 가공 제품을 생산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금은화와 차 제품도 함께 생산하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4대 회약은 재배지를 넘어 중국 전역으로

또 외국에 까지 ‘회’라는 글자 한 자가

널리 알려진 브랜드로 격상되어 앞으로도

이 지역의 경제발전에 한 몫을 충실히 하리라는 확신을

이번 한약조사 방문에서 가지게 되었다.

글ㆍ사진 = 박종철 교수

(국립순천대학교 한의약연구소장)

출처 : 민족의학신문(http://www.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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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약초세상